“습관처럼 주머니를 뒤졌다. 엊그제 산 두통약이 있겠지. 살 때는 10알이었는데 꺼내고 반이 넘게 비어 있다. 아, 이제는 끝내야겠다. 이대로라면, 정말 일찍 죽을지도 몰라. 세 번째 여름, 이별의 예감은 그렇게 기별도 없이 ‘갑자기’ 찾아왔다.”
그 해, 그는 ‘첫 직장’과 이별했다. 밤 열두 시에 컵라면으로 겨우 저녁을 때우면서도, 두통약 한 통을 일주일도 안 돼 끝장내면서도 정말 ‘잘’ 해내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여자가 나쁜 남자와의 연애를 반복하듯, 그 또한 두 번 더 나쁜 ‘만남’을 반복하고 나서야 알았다.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주위를 둘러보니 2년 동안 세 번 회사를 나온 이력은 고작 평균치였다. 올해로 퇴사 2년 차를 맞이한 곽승희(31)씨의 이야기다.
‘퇴사인간’이 탄생했다. 모두가 ‘죽을 힘을 다해’ 회사에 들어가지만, 금세 ‘죽기 일보 직전’이 되어 튕겨져 나가는 이상한 세상 속에서 말이다. 백수라는 말은 가당치 않다. 일과 직장, 더 나아가 삶의 의미를 곱씹기 시작한 이들은 ‘신인류’에 가깝다. 퇴사인간들의 ‘잡(job)뒷담화’를 싣는 잡지 <월간퇴사>의 곽승희, 김정현(30)씨와 퇴사 꿈나무인 ‘어른이들’을 위한 팟캐스트 <내-일은 가볍게>의 진행자 김가현(28), 백서현(29)씨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거듭 힘주어 말한다. “우리 모두에겐 ‘퇴사론’이 필요합니다.” 대체 ‘퇴사’가 뭐길래.
튕겨졌다, 억울했다, 그래서 말하고 싶었다
“퇴사를 할 땐 다들 내가 왜 퇴사를 하는지 몰라요. 도저히 이대로는 견딜 수 없으니까 튕겨져 나오는 거죠. 저도 그랬어요. ‘이 회사와의 모든 것을 다 끊어내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승희씨의 첫 회사는 언론사였다. ‘기자’를 꿈꿨던 시간이 길었다. 정규직으로 입사하기 전, 두 곳의 회사에서 인턴을 했다. 자주 칭찬을 들었다. 그래서 잘할 수 있는 일이고, 좋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작 회사의 일원이 되고 보니 그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매일 대충 눈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에 적신 빵을 욱여넣으며 끼니를 때웠다. 새벽 퇴근길엔 종종 조간신문을 배달하는 오토바이를 만났다. 몸이 망가지는 건 당연했다. 서서히 ‘워크’만 남고 ‘라이프’는 사라졌다. 그녀의 ‘워라밸’(Work and Life-balance)은 그렇게 붕괴됐다.
“취업 시장에 내던져졌을 땐, 얼른 내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압박에 급했어요. 그러니까 앞뒤 잴 것 없이 일단은 들이밀고 본거예요.” 모두가 조급한 선택을 하고 몇몇의 행운아를 뺀 대부분이 방황한다. 하지만 박차고 나와도 같은 두려움 때문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아이러니’가 반복된다. 세 번째 회사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던 어느 날, 동료가 말했다. “저는 이 회사 오기 전에 세 군데를 퇴사했어요.” ‘어? 너도? 나도!’ 대화는 지칠 줄 모르고 이어졌다.
“우리를 괴롭게 만든 회사와 조직과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많을까. (…)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우리 세대에게 퇴사는 일상이자 생활이 된 게 아닐까?”–월간퇴사 1호 편집장의 글 중에서-
승희씨는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리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소리 내어 이야기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퇴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세상엔 이렇게 다양한 ‘퇴사론’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신의 고민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아야 한다고요.” 그렇게 만들어진 퇴사 전문 잡지 <월간퇴사>의 1호와 2호엔 총 18명의 ‘퇴사 이야기’가 실렸다. ‘백수’로 불리던 이들은 ‘퇴사인간’이 됐고 비로소 ‘자신들의 언어’를 가지게 됐다.
“까라면 까!” “싫은데요?” 당당해지니 되찾은 권리
“중문과 다니는 4년 내내 삼국지 끼고 당나라 시를 암송했어요. 그런 저에게 갑자기 IT 업무가 떨어진 거예요. 팔자에 없었던 코딩 공부가 시작됐죠.” 여기서 25년간 몰랐던 적성을 찾았다면 ‘해피엔딩’이었겠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직원의 자질과 자리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완벽한 ‘인사 실패’. 팟캐스트 <내-일은 가볍게>에서 ‘퇴사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가현씨의 얘기다. “회의에 녹음기를 켜고 들어갔어요. 회의 끝나면 깨알같이 받아 적고 모르는 IT개념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공부했죠. 회사로 오는 전화도 다 개인 휴대폰으로 돌렸어요. 복습해야 하니까. 휴대폰에 저장된 녹음파일만 한 200시간은 될 걸요.” 회사는 수수방관했다. ‘바다에 빠트려놓고 알아서 헤엄쳐 나오라는 격’이었다.
“이력서 100개 넣어서 합격한 곳이 여기 하나였는데, 1년도 안돼서 퇴사에 확신이 섰어요. 근데 대책이 없는 거죠.” 그렇게 찾아간 <퇴사학교>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지금 <내-일은 가볍게>를 함께 만들고 있는 백서현씨와 이슬기씨다. “회사를 씹으면서 친해졌는데, 팟캐스트를 만들고부터는 ‘통찰’을 담아서 씹었어요. 하다 보니 점점 화는 가라앉고 결연해지는 거예요. 어차피 나갈 회사라면, 할 건 다 하고 나가야지. 제대로 이용하고 회사를 잘 ‘졸업’하자.” ‘까라면 까’라는 회사의 요구에 당당하게 ‘싫다’고 맞섰다. 그랬더니 몰라서 없는 줄 알았던, 아님 알면서도 눈치로 덮었던 권리가 돌아왔다. “아무도 사용해본 적 없었던 생리 휴가를 신청해 봤어요. 처음엔 여직원들이 생리휴가를 악용하면 어쩌냐, 말도 안 되는 걱정을 늘어놨죠. 근데 결국엔 됐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게 되겠어?’라며 지레 포기했던 일이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모든 사원들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가 6시 반쯤 나왔어요. 계약서를 확인해보니 퇴근 시간은 5시 30분이더라고요. 그래서 해 바뀔 때마다 30분씩 당겨 봤어요. 오늘은 5시 반에 딱 맞춰 나왔죠.” 부장님이 ‘너 왜 지금 가냐’는 시선을 던지면 자신 있게 말한다. “계약서상 퇴근 시간은 5시 30분입니다! 부장님!” 건너 건너 좋지 않은 소문도 돌았지만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삼키지 않았다. 어차피 ‘나가면 안 볼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할 말은 해도 밉지는 않은 막내가 됐다.
가현씨는 지금 2년 넘게 그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다. 회사를 나갈 생각을 하다가 오히려 회사 안에서 ‘더 당당하게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셈. 어차피 누구나 한 직장을 평생 다닐 수 없는 고용불안의 시대라면, ‘언젠가 떠날 생각’으로 후회 없이 누리고 살자는 주의다. “언젠가 저처럼 본의 아니게 IT 업무를 하게 된 문과생들을 위해 <어쩌다 IT>라는 책을 쓸 거예요. 그러기 전엔 이 회사를 잘 졸업해야겠죠?”
시대는 바뀌었는데 왜 조직은 그대론 가요?
“맘먹고 퇴사 선언했더니 ‘휴직’을 제의하더라고요. 하던 일을 다 내려놓고 인도에서 3개월을 살았어요. 언젠가 요가 선생님이 되고 싶어 거기서 자격증도 땄죠. 회사로 돌아온 지 이제 3개월 째예요. 다시 스트레스가 시작될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저도 신기해요.” 가현씨와 함께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백서현씨는 ‘퇴사학교’에서 가현씨를 처음 만날 때만 해도 조직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회사인간’이었다. ‘퇴사 담론’을 나누며 조직이 다시 보였고 결국 퇴사를 결심했지만 ‘휴직’ 카드를 내건 대표의 설득에 넘어갔다. “제가 하는 디자인 일은 창의성과 생산성을 요하는 만큼, 소모된다는 느낌이 아주 심했어요. 근데 복직 이후엔 같은 일을 해도 스트레스가 확 줄더라고요. 재충전이 되니 옛날만큼 숨 막히지 않아요.” 출근길엔 힘이 솟았다.
“요즘 사람들 대부분이 머리를 많이 쓰는 일을 해요. 굉장한 몰두가 필요하니 번아웃(Burn-out)되기 쉬워요. 근데 몸을 움직여서 일했던 제조업 시대의 근무조건을 적용시키고 있으니 버티겠어요? 회사가 나빠서 떠난다기보단 진짜 쉴 시간이 필요해서 나가는 거죠.” 퇴사인간 생활 1년 반째를 맞은 <월간퇴사> 기고가 김정현씨는 바뀐 시대에 조직이 갖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한다. 무조건 일자리를 늘리라는 대책도 허망하다. 지금 같은 조직문화를 가진 일자리를 아무리 늘려봤자 2~3년 버티는 게 전부다. “한 달 일하고 일주일 쉬거나, 1년 일하고 한 달 쉬거나 하는 식의 유연한 구조가 돼야죠. 빈자리는 어떡하냐? 사람 더 뽑아서 시키면 되죠. 일자리도 부족한데.”
그는 말한다. ‘퇴사’라는 이상 징후는 곧 노동의 판도가 뒤집어지고 있는 징조라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완전히 새로운 ‘일의 형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안식 달, 간헐적 휴직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없는 게 참 신기해요. 아 참, 나라면 그런 거 공약할 텐데.” 현재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조직을 모색 중이다. “답 없어서 나왔으니 답을 만들어 봐야죠.”(웃음)
내일(tomorrow)이, 내 일(my job)이 가벼워졌다
“’너는 매일 휴일이라서 좋겠다’ 다들 이렇게 부러워해요. 사실 엄청 바쁜데. 왜 다들 돈이 벌리지 않는 일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이런저런 일들을 질러보고 있어요. 물론 카드로는 못 질러요. 아 ‘시X비용’이 사라졌으니 오히려 더 나은가.”
퇴사 2년 차를 맞은 곽승희씨는 세 번째 회사를 나올 당시 ‘1년간 구직활동에 나서지 않는다’는 선언을 했다. 오롯이 ‘내 것’인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는데 막상 나와보니 다양한 길이 열렸다. “말 그대로 ‘잘(well)’ 살게 됐어요. 낮 2시에 목욕탕에서 몸을 녹일 수 있는 여유와 권리가 있죠. 어떤 일이든 마음이 동하는 순간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어요.” 승희씨는 오는 6월 서울 금천(다) 지역 구의원에 출마한다. 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시흥동을 청년들이 ‘회사인간’의 정체성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단다.
“돈을 안 벌면 당장 죽나요? 아이고, 젊은 친구가 왜 일을 안 해? 한심해하며 혀를 차요, 대부분. 근데요. 우리 세대에게 필요한 건 ‘일’이 아니에요. ‘왜’라는 질문이죠.” 일자리는 없는데 좋은 일자리는 더 없다. 그런데 충족시켜야 할 욕구는 많아졌다. 정현씨는 말한다. “이런 상황에선 어떻게 사느냐를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한 거예요.”
분명, ‘퇴사’는 능사가 아니다. 다만 그는 ‘퇴사’라는 고민, 그 자체가 우리 모두의 화두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취업준비생도, 회사를 다니는 사람도, 회사를 그만둔 사람도 한 번쯤은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이대로 사는 건 괜찮은가” ‘퇴사론’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들은 조금씩 바뀌었다. 누군가는 회사를 ‘잘’ 졸업하고 있고, 누군가는 쉬고 돌아와 새 힘을 얻었다. 또 누군가는 하고 싶은 일을 맘껏 지르는 중이며, 아예 새로운 회사를 만들고 있기도 하다. ‘퇴사’를 고민하며 삶과 일을 다시 생각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21세기 ‘퇴사인간’의 능사가 아닐까.
“세상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이미 퇴사한 사람과 퇴사를 꿈꾸는 사람.” -월간퇴사 1호 中-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