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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백성의 운명을 명분에 맡길 텐가

입력
2018.03.09 15:5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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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주의ㆍ명분론 집착하는 보수

평화 못 지키는 동맹은 의미 없어

북미 정상회담, 한반도 평화 전기

382년 전, 고루한 명분론에 매달려 청나라를 배척했던 조선 지배계층의 무능 탓에 50만 명의 백성이 포로로 끌려갔다. 한국 보수는 대의명분론에 집착했던 척화론자의 후손인가. 기득권 유지를 위해 안보 불안을 이용해 온 습성을 아직도 못 버리고 있다. 사진은 청와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8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북 성과를 설명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연합뉴스
382년 전, 고루한 명분론에 매달려 청나라를 배척했던 조선 지배계층의 무능 탓에 50만 명의 백성이 포로로 끌려갔다. 한국 보수는 대의명분론에 집착했던 척화론자의 후손인가. 기득권 유지를 위해 안보 불안을 이용해 온 습성을 아직도 못 버리고 있다. 사진은 청와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8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북 성과를 설명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연합뉴스

1636년 청나라 침입으로 고립무원에 처한 조선 왕실. 영화 ‘남한산성’은 끝까지 싸우자는 척화파 김상헌과 타협하자는 주화파 최명길의 논쟁을 객관적 시선으로 따라간다. 대륙의 강자로 떠오른 청나라와의 실리외교가 정답이라는 건 자명한 법. 그럼에도 인조(仁祖)와 대신들은 쓰러져 가는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를 고집하는 김상헌을 편든다. 사대부들은 앞다퉈 최명길의 목을 베라는 상소문을 올린다.

사대주의가 뿌리 깊었던 조선 지배층은 냉정하게 국제질서를 바라보는 안목이 부족했다. 청나라가 중원의 패권을 잡을 게 확실한 상황이었는데도, 명분에만 매달려 명나라와 협력할 것을 주장했다. 조선 사대부에게 명나라는 중국의 전통을 계승해 온 적자이자, 임진왜란 때 조선에 구원병을 보내 준 은인의 나라였다. 그렇다고 청나라와 싸울 의지나 능력도 없었다.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했던 세자빈과 원손이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항복을 결심한다. 신하들도 인조의 항복을 적극적으로 만류하지 않는다. 조선 지배층은 ‘삼전도의 치욕’을 겪은 이후에도 명나라 대신 청나라를 섬기며 신분제도에 따른 봉건적 이익을 그대로 향유했다.

그들의 고루한 대의명분론에 죽어나간 건 무지렁이 백성이었다. 최명길은 저서 ‘지천집(遲川集)’에서 “청군이 인조의 항복을 받고 2월 15일 한강을 건널 때 포로로 잡힌 인구가 50만 명이었다”고 썼다. 당시 조선 인구의 5%를 넘는다. 조선인 포로들의 삶은 비참했다. 절반 이상이 굶주림과 추위에 목숨을 잃었고, 일부는 도망하다 잡혀 처형을 당했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청나라에 도착한 포로들은 노예시장으로 팔려나갔다. 이역만리 낯선 나라에서 발가벗겨진 채 놀림감이 된 조선 여인들 중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가 허다했다. 함께 끌려간 소현 세자와 동생 봉림대군은 노예시장의 참상을 목격하고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도포 소매 자락으로 눈자위를 훔치는 소현 세자에게 봉림대군이 말한다. “형님! 우리가 죄인입니다. 나라가 약하니 백성들이 이렇듯 고생을 하는군요.”

역사는 반복된다. 382년 전 남한산성의 논쟁이 한반도에서 재연되고 있다. 조선과 명나라의 관계는 지금의 한미동맹을 바라보는 시각과 비슷하다. 미국은 정부 수립을 도와준 은인이자 한국전쟁 때 구원군을 보내 준 혈맹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도 공유한다. 미국과 함께 G2(세계 2대 강국)로 성장한 중국은 떠오르는 미래권력이다. 경제 분야에선 최대 협력국이다. 우리는 사드 배치로 벌써 10조원 가까운 피해를 봤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선 안보도 경제도 포기할 수 없다. 명분과 의리상 미국을 외면하기 어렵지만, 중국도 무시해선 안 된다. 실용외교를 통해 미중 양국을 설득하고 견인하는 게 상식이자 합리적인 선택이다.

한국 보수에선 이런 균형감각을 찾아보기 어렵다. 집단적ㆍ사적 이익에 목맨 21세기 척화론자다. 냉전적 대결이 치열해질수록 수구보수 세력이 이득을 봤다는 역사적 체험 탓일 것이다. 기득권 유지를 위해 늘 안보 불안을 이용해 온 그들에게 햇볕정책은 퍼 주기요, 남북대화 주장은 종북일 뿐이다. 미국은 자신들의 뿌리인 친일파를 활용해 나라를 만들어 준 은인이요, 중국은 전체주의에 물든 오랑캐일 뿐이다. 미국에 전술핵을 구걸하는 따위의 강경책 외에는 뚜렷이 내세울 만한 대북 정책이랄 것도 없는 까닭이다.

한반도가 종전 65년 만에 정세 변화의 일대 전기를 맞고 있다. 4월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만난다. 예상을 뛰어넘은 파격적 반전이다. 앞으로 두 달 안에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는 셈이다. 평화 정착으로 이어질지, 전쟁으로 연결될지 속단하긴 어렵다. 이럴 때일수록 정치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고루한 명분론이나 정파 이익에만 매달려선 안 된다. 시대 흐름을 잘못 읽으면 보수만 망하는 게 아니다. 백성이 고통받고 나라가 망한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

고재학 논설위원 겸 지방자치연구소장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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