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원숭이 치어죽인 차
동료 무리가 기억해 돌멩이 던져
국가가 응징 대신하는 현대에도
종교 등 이름으로 곳곳서 벌어져
복수의 심리학
스티븐 파인먼 지음・이재경 옮김
반니 발행・272쪽・1만4,500원
한국 영화 ‘밀양’(2007)의 주인공 신애(전도연)는 홀로 키우던 아들을 범죄로 잃는다. 분노와 실의로 희망을 놓았던 신애는 교회를 다니며 새로운 삶을 모색한다.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하기 위해 교도소를 찾아간다. 살인자는 주께서 이미 용서하셨다며 평안한 표정을 짓는다. 신애는 ‘용서는 자신의 것’이라고 분노하며 신을 저주한다. 용서로서 살인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려 했던 계획이 틀어져서다. 신애에게 용서는 복수의 한 방편이었던 셈이다.
복수는 삶에 내재돼 있다. 누군가가 한 대 때리면 바로 한 대를 되갚아주는 원초적인 대응 말고도, 소심한 응징 등 여러 형태의 복수가 생애에 펼쳐진다. 만물의 영장을 자부하는 사람만이 자신이 당한 손해와 억울함을 오래 기억했다가 상대에 되갚는 것일까. 2000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한 주민은 차를 몰고 가다 뜻하지 않게 비비원숭이 한 마리를 치어 죽인다. 주민은 사흘 후 같은 지점을 지나가는데 그의 차를 알아본 한 비비원숭이 한 마리가 날카로운 소리를 냈고, 원숭이 무리들이 일제히 차에 돌멩이를 던졌다. 복수는 영장류가 지닌 원초적인 본능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심리학 박사로 영국 배스대학 경영학과 명예교수인 저자는 “인간의 끈질기고 강력한 욕구”이고 “우리의 생물사회학적 기질에 붙박이로 섞여서 전수”되는 복수를 다방면으로 돌아본다.
복수는 공동생활을 유지하는 방편 중 하나였다. 집단의 안위에 대한 위협에 대응하는 수단이었다. 누군가가 불의한 일을 당하면 정의로서 복수가 이뤄져야 집단의 질서가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인류가 수렵채집 단계를 넘어 농경생활을 하게 되면서 복수는 복잡다단하게 분화했다. 단순한 개인적 응징은 무법상태로 이어졌고, 사회를 단속하기 힘들게 만드니 국가가 복수를 대신하도록 사회체계가 진화했다. 사회 지도 이념이자 윤리의 잣대 역할을 하는 종교가 발달하면서 복수에 대한 인식은 바뀌었다.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등 거대 종교에서 복수에 관한 훈계는 “전매특허”였다. 복수는 정당화 될 수 있지만 신과 신의 대리인의 결정에 따라야 만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기독교는 십자군 전쟁, 종교재판 등 신앙을 빙자해 응징을 후원하거나 묵인했다. 불교도 다를 바 없다. 스리랑카의 선동적 불교 승려들은 소수 타밀족 힌두교도와 무슬림과의 평화 협정을 반대하고 보복성 습격을 마다 않는다. 불교국가 미얀마에서 로힝야족 무슬림은 탄압의 대상일 뿐이다.
책은 복수의 심리가 인류의 역사에 어떻게 작동했는지 두루 살핀다. 책과 영화 등을 종횡하며 복수의 쾌감과 죄의식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도 돌아본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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