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한 목표없이 재무개선 급급
17조 쏟아부었지만 ‘밑빠진 독’
기술 경쟁력마저 잃고 퇴출 기로
10조원이 넘는 혈세가 투입된 성동ㆍSTX조선해양이 결국 법정관리와 대규모 감원을 앞두고 있다. 구조조정의 성패는 정부 당국과 금융기관의 신속하고 과감한 조치로 그 기간을 최소화하는 데 달려있다. 하지만 두 조선사의 구조조정 과정은 뚜렷한 목표 없이 보조금을 지급하며 어려운 결정은 다음 정부에 넘기려는 책임 회피의 연속으로, ‘구조조정 실패의 교과서’라 할만하다.
한때 성동ㆍSTX조선의 발전은 눈부셨다. 2003년 경남 통영시에 문을 연 성동조선은 육상건조라는 차별화 전략으로 급성장했다. 2007년엔 수주 잔액이 전 세계 조선사 중에서 8위에 올랐다. 2001년 경남 창원시의 대동조선을 ㈜STX가 인수하면서 출범한 STX조선도 2008년 수주 잔액이 세계 4위를 기록했다. 연간 수주실적은 현대중공업ㆍ대우조선해양에 이어 세계 3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두 조선사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한파를 피하지 못했다. STX조선은 호황기에 중국과 유럽으로 무리하게 생산기지를 확장한 게 발목을 잡았다. 경영상 어려움을 겪던 성동조선은 2010년 경영정상화 계획 이행 약정(자율협약)을 체결하고 채권단 자율협약(느슨한 형태의 구조조정) 체제에 돌입했다. 성동조선은 2010년부터 현재까지 9조6,000억(신규 자금 2조7,000억원, 보증 5조4,000억원, 출자전환 1조5,000억원)의 금융 지원을 받았지만, 현재 완전 자본잠식 상태다. 유동성 위기에 처할 때마다 수출입은행이 총대를 메고, 신규 자금을 넣거나 출자전환을 하며 ‘좀비기업’의 생명을 연장해온 것이다.
STX조선에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등이 7조9,000억원(여신 1조원ㆍ출자전환 6조9,000억원)을 쏟아부었으나, 현재(2월 기준) 가용한 자금은 1,475억원에 불과하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기업이 다시 살아나길 바라는 주주의 이해와 빚을 빨리 갚아줬으면 하는 채권자 이해가 얽히면서 구조조정 시기를 미루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의 자금 지원이 반복돼왔다”고 지적했다. 산은은 STX조선, 수은은 성동조선의 최대 주주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는 “계속된 연명책으로 구조조정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지적했다.
그 사이 중국 조선사가 치고 나오면서 성동ㆍSTX조선의 주력 선박인 범용선(유조선ㆍ컨테이너선ㆍ벌크선)의 경쟁력이 사라졌다. 구조조정이 재무구조 개선에만 머물러 기술경쟁력마저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신규 수주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성동조선은 청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EY한영회계법인의 재무실사 결과에서 성동조선은 청산가치(7,000억원)가 존속가치(2,000억원)의 3배가 넘는 것으로 평가됐다. 회생 기회를 얻은 STX조선도 가시밭길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STX조선의 주력인 중형유조선은 가격경쟁력을 내세운 중국 조선사와의 수주경쟁에서 이기기 힘들다”고 말했다.
막대한 혈세를 들여 부실기업의 생명을 연장해오다가 이제야 원칙에 따른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이미 해당 기업의 경쟁력은 되살리기 어려울 정도로 손상된 것이다.
성 교수는 “국책은행이 부실기업을 계속 지원하는 방식은 ‘구조조정을 하지 않아도 정부 지원을 받아 연명할 수 있다’는 인식을 전반에 퍼트려 산업경쟁력을 떨어트릴 수 있다”며 “구조조정 원칙을 명확히 세워 부실기업은 정리하는 식으로 구조조정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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