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남북 정상회담 합의와 북미 직접대화 추진으로 한반도 정세가 급물살을 타자 ‘합당한 노력과 역할’을 강조했지만 마땅한 카드가 없어 고심하고 있다. 의장국으로선 주도권을 발휘했던 6자회담의 재개를 내심 바라지만, 북한의 거부와 미국의 견제로 성사 자체가 불투명하다. 당장은 러시아와 한 목소리로 ‘중재자’를 자임하겠지만, 특단의 계기가 없으면 보조적인 역할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8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자국 외교부의 입장에 발맞춰 ‘중국 역할론’을 일제히 거론했다. 하지만 원론적인 주장에 그쳤을 뿐 6자회담 재개 등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 경우는 없었다. 되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북한과 미국 모두 자신감이 넘쳐 있어 6자회담 재개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이전보다 협상력이 커졌다는 입장이고, 미국은 강력한 대북 압박이 상황 변화를 끌어냈다고 보는 만큼 양측 모두 다자협의체의 긍정적인 역할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간 중국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며 쌍중단(雙中斷ㆍ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 활동과 한미 연합훈련 동시 중단)과 쌍궤병행(雙軌竝行ㆍ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체제 구축 병행추진)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이들 방안 모두 남북을 포함한 한반도 주변국들의 포괄적인 협의와 공감대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6자회담 재개를 염두에 둔 것이다. 겅솽(耿爽) 외교부 대변인은 전날 “6자회담의 조속한 회복은 국제사회의 공동인식이자 공동염원이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에서도 명확이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중국도 6자회담 재개가 쉽지 않음을 인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최악으로 평가 받는 북중관계 때문에 고민이 크다. 이전에는 북한이 자발적으로 중국을 뒷배경으로 삼을 만큼 대북 영향력이 컸지만 지금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대북 특사가 평양에서 철저히 외면당하는 상황이다. ‘한ㆍ미ㆍ일 대 북ㆍ중ㆍ러’ 구도라도 명확하면 중재 역할을 할 공간이 있겠지만 핵 보유국을 주장하는 북한은 이미 독립변수가 된 지 오래다. “대화의 형식과 틀은 중요하지 않다”는 왕이(王毅) 외교부장의 언급은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토로에 다름 아니다.
이에 따라 중국이 자신의 역할을 어떤 형식으로 관철시키려 할 지 주목된다. 일단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입장이 애매해진 러시아를 끌어들여 중재자를 자임하며 미국의 대북 강경파와 일본을 대상으로 공동 행보를 펼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대화 대 제재’ 구도를 의식적으로 부각시켜야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고 6자회담을 공세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이 주도권을 의식한 나머지 한미일 공조를 약화시키는 데 주력한다면 북핵 문제의 해결은 오히려 요원해질 수도 있다.
베이징(北京)의 한 외교소식통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협의체로서 6자회담은 여전히 유용하지만 북한의 핵 개발과 악화된 북중관계, 미중 간 파워 경쟁 등 여러 요인들 때문에 단기간에 재개되는 건 어려울 것”이라며 “중국이 ‘차이나 패싱’(중국 배제)을 우려해 무리하지만 않는다면 결국 유엔 차원의 대북제재 해제나 대북 경제지원 등에서 중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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