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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철의 프레임] 관심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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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철의 프레임] 관심 예찬

입력
2018.03.08 14:56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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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초년생 시절,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첫 수업시간에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는 일이었다. 영어가 서툴러서만은 아니었다. 다른 학생들의 자기소개 방법과 내 방법이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내 소개 방식은 대충 이랬다.

“저는 한국에서 유학 온 학생이며, 학부 때 심리학을 전공했습니다. 앞으로 이 수업에서 많은 것을 배워가겠습니다.” 부족하다 싶으면 출신 대학을 추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학생들, 특히 거의 모든 미국 학생의 소개는 딴판이었다. 그들은 대개 이렇게 시작했다.

“제가 관심 있는 연구주제는 ○○○입니다. 이 주제에 관심 갖게 된 이유는…”

아니, 이제 막 박사과정을 시작하는 학생이 어떻게 관심 있는 연구주제를 그렇게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나로서는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들은 너무 자연스럽게 관심 주제를 중심으로 자신들을 소개했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관심사를 소개하는 것이 일종의 문화적 의식(儀式)이었다. 그들 사이에는 대학원 수업시간에 자신을 소개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 관심 있는 연구주제를 소개하는 것이라는 일종의 합의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어릴 적부터 “I’m interested in~”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을 소개하도록 훈련받았고, 그런 문화적 의식을 통해 ‘개인적 관심’을 자연스럽게 개발시켜왔다. ‘무언가에 관심 있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였다.

관심 있는 마음 상태가 우리 삶에 중요하다는 점을 더 실감하게 된 것은 행복 연구를 통해서다. 심리학자들의 행복 측정방법은 매우 다양하지만, 그 중 한 가지는 일정 기간 경험한 감정들을 측정하는 것이다. 그 기간 동안 경험한 긍정 감정이 부정 감정보다 클 때를 우리는 ‘행복한 상태’라고 부른다. 놀라운 사실은 행복을 측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감정 리스트 중에 ‘관심 있는(interested)’이라는 감정이 포함된다는 점이다. “당신은 얼마나 행복하십니까?”라고 묻는 대신 “당신은 무언가에 얼마나 관심 있습니까?”라고 바꿔 묻는 꼴이다. 무언가에 관심 있는 상태가 바로 행복한 상태임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관심이 생겼을 때, 우리는 그것을 호감이나 사랑이라고 부른다. 부른다. 사랑이란, 다른 말로 옮기면, 상대방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 찬 상태다. “사랑해”라는 직접 표현도 우리를 기분 좋게 하지만, “너한테 관심 있어”라는 은근한 표현이 우리를 설레게 한다.

프로이트가 행복을 얻기 위한 최고의 방법으로 사랑을 제안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관심의 대상이 특정한 사람을 넘어설 때, 우리는 그것을 ‘취미’라고 하거나 ‘예술’, ‘문학’ 혹은 ‘과학’이라고 부른다. 관심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을 때, 즉 삶이 지루함으로 가득할 때, 우리는 그것을 ‘불행’이라고 부른다. 지루함이 인간을 얼마나 불행하게 만드는지에 대해선 이미 많은 연구들이 증명해주었다. 이처럼 관심은 행복의 가장 큰 원천이다.

관심 있는 마음은 몰입하는 마음과 동의어다.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에서는 일상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활동이 제공하는 행복의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서베이를 진행한 적이 있다. 지금 그 순간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는지, 그 순간 얼마나 행복한지를 묻고 나서, 혹시 그 순간에 딴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만일 딴 생각을 하고 있다면, 유쾌한 딴 생각인지, 불쾌한 딴 생각인지,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중립적인 딴 생각인지를 물었다. 이 연구에서 밝혀진 흥미로운 사실은,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든 딴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순간의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가장 큰 행복을 경험한다는 사실이었다. 마음이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 때가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었다. 지금 여기에 머무르는 마음이란 관심 없이는 경험할 수 없는 마음이다.

관심 있는 마음은 성취에도 중요하다. 인간의 성취를 예언하는 강력한 변인으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그릿(GRIT)은 어떤 일에 대한 장기간의 관심을 지칭한다.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수시로 떠올라 이것저것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아이디어의 방황이 아니라, 한 주제에 대해 오랜 기간 뚝심 있게 관심을 갖는 것이 그릿의 핵심이다. 오랜 기간의 관심 없이 일시적 영감만으로 얻을 수 있는 성취는 많지 않다. 소설가 안정효의 표현대로 순간적 영감이란 정신적 설사와 같아서 결국에는 멈춰져야 한다.

관심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또 있다. 관심은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 역할과 직업이 아닌, 우리의 관심에 의해 구축된다. 의사는 생명과 질병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고, 학자는 사실과 진리와 아이디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관심의 내용은 없고 역할과 직업만 있을 때, 우리는 그를 ‘영혼 없는 사람’이 아닐까 의심한다.

이처럼 관심은 우리 삶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서 행복한 사람, 성취하는 사람, 영혼이 숨쉬는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우리가 서로에게, 우리 자신에게 마땅히 물어야 할 질문은 출신 지역이나 학교, 나이가 아니라 “당신은 무엇에 관심 있습니까?”이다. 관심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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