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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형 성폭행 형량 두 배로…미투 막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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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형 성폭행 형량 두 배로…미투 막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완화

입력
2018.03.0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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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피해자보다 우월한 권력을 악용해 강제로 성관계를 갖는 가해자에게 적용되는 ‘업무상 위계ㆍ위력에 의한 간음죄’의 형량을 지금의 두 배인 10년 이하 징역으로 올리는 방안이 추진된다. 여성들의 미투(#Me Too) 폭로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을 받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위법성도 없애주기로 했다. “무고죄로 고소하겠다”는 가해자 협박에 시달리는 피해자를 위한 법률 지원도 강화한다.

여성가족부와 법무부,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는 8일 이런 내용을 담은 ‘직장 및 문화예술계 성희롱ㆍ성폭력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잇단 미투 폭로가 문화예술계를 시작으로 정치권 등으로까지 들불처럼 번져 가는 가운데 성폭력 범죄를 엄단하고, 피해자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들이 담겼다.

정현백 여가부 장관은 이날 관계부처 협의회에서 “미투 운동은 우리사회에 만연한 가장 오래된 적폐인 성별 권력 구조와 성차별 문제에 대한 뜨거운 분노가 마침내 터져 나온 것으로, 이제는 미투 운동을 넘어 사회구조적 변화를 위한 직접 행동에 나서야 할 중요한 지점에 서 있다”면서 “정부는 이번 대책을 포함해 그간 관계부처가 머리를 맞대 마련한 일련의 대책들을 범정부 협의체를 중심으로 앞으로 종합화ㆍ체계화 해 이행하고 점검ㆍ보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업무나 고용 등 보호ㆍ감독 관계의 성폭력 범죄 처벌과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업무상 위계ㆍ위력 간음죄(형법 303조)는 법정형을 현행 ‘5년 이하 징역, 1,500만원 이하 벌금’에서 ‘10년 이하 징역, 5,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높이기 위한 법 개정을 추진한다. 또 현재 ‘2년 이하 징역, 500만원 이하 벌금’이 적용됐던 추행죄는 ‘5년 이하 징역, 3,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이렇게 법정형이 올라가면 공소시효 역시 업무상 위계ㆍ위력 간음죄는 7년에서 10년으로, 업무상 위계ㆍ위력 추행죄는 5년에서 7년으로 각각 함께 늘어난다.

정현백(왼쪽) 여성가족부 장관이 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범정부 성희롱·성폭력 근절 추진 협의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제공
정현백(왼쪽) 여성가족부 장관이 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범정부 성희롱·성폭력 근절 추진 협의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제공

검찰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폭력 사범에 대한 사건처리 기준’을 강화해 피해자의 가해자에 대한 종속관계 정도, 범행의 반복성, 범행 결과 등을 고려해 엄정하게 사건이 처리되도록 구속과 구공판, 구형 기준을 정립하기로 했다. 죄질이 나쁜 가해자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약식 사건 대신 정식 재판을 청구하고, 재판에서 더 높은 형량을 구형하겠다는 뜻이다.

아울러, 문화예술 분야 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성폭력 가해나 사건 은폐, 조직적 방임, 피해자 불이익 처분 등이 발생한 단체에는 정부 보조금 지급을 제한할 수 있게 법적 근거를 마련키로 했다.

성폭력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2차 피해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방안도 발표됐다.

그간 성폭력 피해자들은 ‘특정인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하더라도, 사실을 말함으로써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 적용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처벌 받을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앞으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미투 폭로의 경우 수사 과정에서 위법성의 조각사유(형법 310조)를 적극 적용해 성폭력 피해자가 처벌 받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수사기관이 배려하기로 했다. 미투 폭로에는 명예훼손죄를 적용해 기소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또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나 ▦무고죄를 이용한 가해자의 협박 ▦가해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제기 등에 대한 민ㆍ형사상 무료법률 지원을 강화한다. 이를 위해 관련 예산을 매년 늘려 법률구조공단과 대한변협법률구조재단, 한국성폭력위기센터 등을 통한 피해자 지원 사업을 적극 뒷받침하기로 했다.

또 피해자 상담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해고나 불이익 처분 등 2차 피해가 확인되면 해바라기센터 연계를 통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성폭력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준 회사 등에 대한 처벌 규정을 구체화 할 계획이다.

아울러 미성년자인 성폭력 피해자는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를 성인이 될 때까지 유예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어릴 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세월이 흐른 뒤 성인이 되어서도 가해자 등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소멸되는 시점을 성인이 된 이후로 미뤄주겠다는 것이다.

사업주에 의한 직접 성희롱 행위나, 성희롱 가해자인 직원에 대한 징계 미조치 등 행위에는 현재 과태료인 처벌을 징역형까지 가능하도록 형사처벌 규정을 강화한다 했다. 또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 직장내 성희롱 익명 신고시스템을 8일부터 개설해 익명 신고 만으로도 사업장에 대한 행정지도에 착수하기로 했다.

이번 대책 중 성폭행 형량 강화나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시효 연장 등은 법 개정이 필요해 국회의 협조를 받아야만 실현이 가능하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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