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협상 태도 무성의” 주장
석달 동안 진행한 협상 물거품
의협 회장 선거 뒤 다시 시작해야
정부와 이른바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협상을 벌여온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협상단이 갑작스럽게 전원 사퇴를 했다. 협상의 한 축이 무너지면서 지금까지의 협상은 사실상 원점으로 되돌아갔고, 문재인 케어의 시행은 기약 없이 미뤄지게 됐다. 정부가 의사단체에 너무 끌려다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7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의협 비대위는 9차 의ㆍ병ㆍ정(의협 비대위ㆍ병원협회ㆍ정부) 실무협의체가 열린 다음 날인 6일 비대위 몫 협상단원 6명이 전원 사퇴한다고 밝혔다.
비대위는 복지부의 무성의한 협상 태도를 지적하면서 “새로 선출되는 의협 신임 회장과 비대위가 상의해 새로운 협상단을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는 23일 열리는 의협 회장 선거 당선자의 의견을 들어 협상단을 새로 꾸리겠다는 것이다.
이번 총사퇴로 석 달 가까이 끌어온 협상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됐다. 복지부는 지난해 8월9일 문재인 케어를 발표하면서 “연내(2017년말까지) 비급여의 급여화 등 세부 추진 일정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재인 케어에 반발하는 의사들이 지난해 10월 비대위를 꾸려 반대 투쟁을 벌이면서 정부는 세부 추진 일정의 결정 시기를 늦추고 대화에 나섰다. 지난해 12월21일 1차 협의체를 시작으로 총 9차례에 걸쳐 열린 의ㆍ병ㆍ정 협의체가 그 산물이다. 이 협의체에서는 심사평가 체계 개선 방안 협의 등 소기의 성과가 있었고, 9차 협의체 때는 합의문 초안까지 테이블에 올라올 정도로 논의가 진전됐다는 것이 복지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의협 회장 선거에서 어떤 후보가 당선되냐에 따라 지금까지 성과가 물거품이 될 수도, 협의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선거에 출마한 6명의 후보는 상대적 온건파부터, 파업 투쟁을 주장하는 강경파까지 성향이 다양한데, 문재인 케어에 불만이 큰 후보가 당선된다면 협의체는 존속 여부마저 불투명해 진다.
이에 회장 선거와 무관하게 내달 22일까지는 협상 전권을 위임 받은 비대위가 협상단 총사퇴에 나선 것은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협상의 또 다른 한 축인 병원협회의 고위 관계자는 “의협 비대위가 정책을 논의하는 실무 협의체에 정치(선거)를 끌어들이며 일방적으로 판을 깨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깝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필수 의협 비대위원장은 “복지부의 무성의한 태도로 지금까지 협의 과정에서 공감대가 형성된 부분이 거의 없으며 합의문 초안 역시 복지부의 일방적인 의견에 불과하다”면서 “지금까지 논의된 내용은 차기 집행부에 잘 인계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부가 이해당사자 중 하나인 의협에 끌려다니면서 문재인 케어가 휘청대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김남희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팀장은 “협상이 의사단체와의 논의에 집중되면서 문재인 케어의 근본 방향이 흔들리고, 시행마저 늦어지고 있어 우려가 된다”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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