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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가니’가 친고제 폐지 계기, 전과 9범 성폭행에 전자발찌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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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가니’가 친고제 폐지 계기, 전과 9범 성폭행에 전자발찌 도입

입력
2018.03.08 04:40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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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사람 아닌 짐승을 죽였다”

강간 이웃 살해 김부남 사건 계기

1994년 성폭력특별법 만들어져

#2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소송으로

사업주의 성희롱 예방 의무화

초등생 납치 성폭행 사건은

화학적 거세제도 도입하게 해

성폭력대책 촉구 집회. 성폭력 근절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은 서울 명동성당에서 집회를 갖고 성폭력 방재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1996.7.9. 최흥수 기자
성폭력대책 촉구 집회. 성폭력 근절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은 서울 명동성당에서 집회를 갖고 성폭력 방재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1996.7.9. 최흥수 기자

“문귀동이 직무에 집착한 나머지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으로 파면되고… 형벌 못지않은 정신적 고통을 받았고….” (1986년ㆍ서울고법이 부천서 경찰의 성고문을 인정하면서도, 검찰이 가해자를 기소유예해 처벌하지 않은 것을 정당하다고 밝힌 이유)

“성폭행을 비관한 한 여대생의 죽음은 정조관념이 희박해진 이 시대 여성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1997년ㆍ성폭행당한 후 자살한 사건에 대한 모 방송사 뉴스 보도 멘트)

“한때 옥상에서 떨어지고 싶었습니다. 학교 대책위 교사 중 한 명이 죽어야 뭔가 달라질 것 같았습니다.” (2011년ㆍ장애학생들에 대한 교직원의 상습 성폭행 사건의 처벌이 거의 안 된데 대한 폭로자 최사문 교사의 인터뷰 발언)

“만약 인사에서 원하는 곳으로 배치됐다면 이런 폭로를 했을까 싶다. 지금 이러는 이유는 다른 목적이 있지 않겠느냐.” (2018년ㆍ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 이후 언론에 보도된 한 검사 반응)

30여 년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지독히도 변하지 않았다. 성범죄 피해자는 고통받고 가해자는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현실 말이다. 하지만 늘 제자리걸음이었던 것은 아니다. 성폭력특별법(현행 특례법) 제정, 성범죄자 신상공개, 친고죄 폐지 등 그나마 관련 제도가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데는 고비마다 피해자들의 피맺힌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직접 고소를 해야만 처벌할 수 있었던 성범죄 친고죄가 완전히 폐지된 것은 2013년. 미국ㆍ영국ㆍ독일ㆍ프랑스 등 서구 국가들은 물론 중국ㆍ대만ㆍ이집트 등에도 없는 성범죄 친고죄를 우리나라는 60년간 유지해왔다. ‘피해자 사생활 보호’라는 명목이었지만 이로 인해 성범죄자 8명 중 7명이 처벌받지 않고 거리를 활보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범죄의 악순환을 고착화했다.

영화 ‘도가니’ 포스터
영화 ‘도가니’ 포스터

전기가 마련된 계기는 2011년 영화 ‘도가니’ 열풍이었다. 2000년부터 5년간 광주 인화학교에서 청각장애 학생들을 성폭행ㆍ추행한 가해자는 교장 등 10명, 피해자는 12명이었다. 그러나 이 중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단 2명, 그것도 고작 징역 1년8개월~2년6개월(별건 두 차례 선고형량 합산)이었다. 가난하고 부모조차 장애인이었던 피해 아동들이 가해자에게 돈으로 회유당하고 협박당한 것은 친고죄 때문이었다. 2011년 장애인 대상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가 먼저 폐지된 뒤, 2013년 전체 성범죄에까지 확대됐다. 여성계에서는 수십 년간 친고죄가 사실상 가해자를 위한 제도라고 폐지를 주장했으나, 수많은 희생이 따른 뒤 겨우 5년 전에야 이뤄진 것이다.

성폭행 의부를 살해한 김보은씨.
성폭행 의부를 살해한 김보은씨.

1994년 성폭력특별법 제정도 1991년 30세가 된 여성(김부남)이 9살 때 자신을 강간한 이웃집 아저씨(송백권)를 살해한 사건, 1992년 9살 때부터 대학 때까지 의붓아버지(김영오)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김보은)이 남자친구(김진관)와 함께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의 여파로 이루어졌다. “나는 사람이 아닌 짐승을 죽였다”는 김부남씨의 공판 발언은 아직까지 회자된다. 특별법에는 친족간 성범죄 처벌, 만13세 미만 대상 범죄에 대한 가중처벌, 피해자보호 등이 담겼고 지속적으로 개정됐다.

2006년 서울 용산에서 동네 상점 주인이 11세 어린이를 납치해 성추행한 뒤 살해하고 불에 태운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가해자는 다른 성범죄를 저질렀는데도 집행유예로 풀려 나와 있는 동안 딸을 죽였다” “법원의 관대한 처벌이 우리 딸을 죽였다”고 울부짖었다. 실제 범인은 전과 9범으로 앞서 4세 어린이를 성추행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5개월 전 풀려난 상태였다. 이 사건의 충격은 아동ㆍ청소년 성범죄 제도 강화로 이어졌다. 2008년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에 대한 친고죄가 가장 먼저 폐지(13세 미만은 1997년 폐지)됐다. 또 이름과 거주 시ㆍ군ㆍ구까지만 공개됐던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자의 주소와 사진, 직장까지 공개됐다. 특정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ㆍ전자발찌 부착도 도입됐다. 성범죄자 위치추적제도는 1997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처음 시행돼 미국ㆍ프랑스ㆍ호주 등 10여 개국에서 운영 중이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2008년 8세 여아를 잔혹하게 성폭행한 ‘조두순 사건’ 등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범죄는 끊이지 않았다. 2010년 2월 여중생을 성폭행ㆍ살해한 ‘김길태 사건’, 그해 6월 초등학생을 납치해 성폭행한 ‘김수철 사건’이 발생했다. 전과 18범 조두순, 전과 8범 김길태, 전과 12범 김수철 사건이 던진 충격은 성충동 약물치료(화학적 거세) 제도 도입으로 이어졌다.

특이한 사실은 그동안 성범죄 제도의 진전은 대부분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범죄가 계기였다는 점이다. 전영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아동ㆍ청소년은 약자 중의 약자이기 때문에 관련 범죄가 크게 공분을 산다”며 “최근의 미투(#MeToo)운동 관련 범죄는 권력관계 속에서 벌어져 와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1993년 서울대 우 조교가 신모 교수를 상대로 낸 국내 최초 성희롱 소송은 법원에서 인정받기까지 6년이 걸렸다. 남녀고용평등법에 사업주의 성희롱 예방 의무를 넣는 계기가 됐으나,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징계가 의무화 된 것은 지난 해 이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이 검찰ㆍ법원에서 외면 받다가 민주화 이후인 1988년 대법원에서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져 가해자가 결국 징역 5년을 살았던 것은, 끔찍한 범죄라도 성인 여성을 상대로 한 성범죄는 권력관계에서 쉽게 왜곡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고 장자연씨 사건 또한 권력층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무성했지만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안상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평등문화교육연구센터장은 “미투 운동이 왜 지금 확산하느냐는 중요한 점”이라며 “여성에 대한 편견과 혐오도 많지만 여성들의 목소리도 강하게 터져 나오는 기반이 생겼고, 한편으로 저급한 혐오 표현들이 반발을 부른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안 센터장은 이어 “미투 운동은 하나의 문화운동 성격도 있는 것으로 보이며, 권력관계나 조직문화를 바꾸는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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