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도 (건강 해치는) 똑같은 술이다.” “프랑스의 정체성이다.”
와인 종주국 프랑스에서 와인 유해성 논쟁이 정치 쟁점으로 번지고 있다. 와인 전도사를 자처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향해 내로라 하는 의사들이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고 나서면서다. 이들은 마크롱 대통령이 와인산업 보호를 위해 국민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법정에 설 각오까지 하라고 경고했다. 논쟁은 프랑스 의회로 옮겨 붙을 조짐이다.
논쟁은 아녜스 뷔쟁 보건부 장관이 지난 달 프랑스 공영 방송에 출연, “와인도 맥주나 보드카, 위스키와 똑같은 알코올일 뿐이다”며 “따라서 다른 술처럼 규제해야 한다”고 소신을 밝히면서 촉발됐다. 하루 한두 잔 와인은 건강에 이롭다는 프랑스 사회의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주장이었다.
프랑스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와인업계는 “프랑스 문화의 일부인 와인을 악의 근원으로 몰아가는 마녀사냥을 중단하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여기에 마크롱 대통령까지 “나도 점심과 저녁에 와인을 마신다”며 와인업계를 적극 옹호했다.
그러자 의료업계가 집단으로 나섰다. 프랑스 의학원의 제라르 뒤부아 교수 등 9명의 저명한 의사들이 르 피가로지 공동기고에서 마크롱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의료진들은 기고문에서 “대통령이 와인은 과음과 관계가 없다는 가짜 뉴스를 앞장서서 퍼트리고 있다”며 “국민들을 알코올 관련 질환으로부터 보호하지 못하면 언젠가 처벌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고 공격했다. 또 프랑스에서 연간 5만 명이 알코올이 유발하는 각종 질환으로 사망한다는 통계도 제시했다.
실제 프랑스 국민들의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 자료에 따르면 프랑스는 연간 12.1리터를 소비해, 독일(11.7리터) 영국(11.3리터) 스웨덴(9.1리터)보다 높았다.
한편 마크롱 대통령의 노골적인 와인 편들기는 경제 살리기 의도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난해 프랑스 와인 수출 규모액은 129억 유로(17조 1,424억)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그나마 와인 소비의 잠재적 유해성을 인정하며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온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조차 프랑스 정부가 과연 와인 산업에 대한 규제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을 품고 있다”고 전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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