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게 쉬는 건지 몰랐는데, 쉬는 거였네요. 더 잘 쉬었어야 했는데…”
지난해 9월 독일 ARD 국제음악콩쿠르 피아노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피아니스트 손정범(27)은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콩쿠르 직후 한국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일단 쉬고 싶다”고 말했던 그였다. 그 동안 잘 쉬었냐는 질문에 “정말 바빠졌다”는 답이 되돌아왔다. 약 6개월 간 무대에 30여번 올랐다는 그를 5일 서울 종로구 금호아트홀에서 만났다. 손정범은 2일 스위스 바젤에서 협연 무대에 오른 뒤 8일 독주회를 위해 바로 한국에 들어온 직후였다.
ARD 콩쿠르 이전에도 손정범은 조르지 에네스쿠 국제콩쿠르, 스위스 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 등에서 수상했다. 하지만 규모가 큰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확실히 연주 기회가 많아졌다. ARD 콩쿠르 우승으로 앞으로 3년 동안 슈투트가르트, 뮌헨, 드레스덴 등 독일 주요 도시에서 50번의 연주기회를 부여 받았다. 1952년 시작된 ARD 국제음악콩쿠르는 클래식 전분야를 망라하는 독일 최고 권위의 콩쿠르다.
손정범은 올해 연주 중 4월 독일에서 열리는 클래식 축제인 루어 피아노 페스티벌 무대를 기대 중이라고 했다. 이 공연은 이미 매진됐다. “독일에 있는 친구들이 얘기를 해줘서 알았어요. 우승 후 변화를 많이 체감하지 못했는데, 매진이라고 하니 기분이 너무 좋았죠.”
클래식계에선 ARD 콩쿠르 전 손정범이 슬럼프를 겪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나 그는 “방황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저는 똑같이 하고 있는데 결과가 잘 안 나오면 남들이 보기에 슬럼프인 것 같아요. 결과가 안 좋았을 때는 ‘왜 안 좋을까’ 하면서 다시 악보를 꺼내고 제 연주를 들어보고 그랬어요.” 외부 요인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연주자로서 가장 기본에 집중했다는 얘기였다. 손정범은 자기객관화를 통해 잘못된 부분을 고쳐가며 스스로를 발전시켰다. “제가 뛰어나다고 스스로 생각할 기회가 별로 없던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다른 사람의 칭찬이 정말 중요해요(웃음).”
그는 콩쿠르 이후 처음으로 한국에서 독주회를 갖는다. 모차르트 환상곡, 쇼팽 에튀드 OP.25 전곡 연주와 더불어 공연의 백미는 슈베르트의 소나타 제21번이다. 슈베르트의 후기 곡으로 젊은 연주자가 감성을 표현해 내기 어렵다는 평을 받는 곡이다. 그럼에도 선곡한 이유는 “제가 슈베르트를 좋아하는 것 반, 다른 사람들로부터 ‘잘 어울리고 잘 연주한다’는 말을 듣기 때문이 반”이라고 한다. 손정범은 27세의 자신이 표현하는 슈베르트를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손정범은 가수 아이유의 팬이라고도 했다. 자신이 듣는 음악의 99%가 클래식이지만, 1%는 아이유라며 수줍게 밝혔다. “기악을 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색을 내는 게 평소 목표잖아요. (아이유는) 자신의 목소리로 다양하게 표현하니까 듣다 보면 제 연주에도 도움이 될 때가 많아요.” 그가 무대 위 아이유를 보듯 반한 연주회는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그리고리 소콜로프(68)의 연주였다. “3,4년 전인데, 이 이상의 라이브 연주는 더 이상 없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이후로 리사이틀도 안 가게 되더라고요.”
손정범은 더 좋은 연주홀, 더 좋은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에는 조바심 내지 않는다. 자신이 연주력을 유지하면 자연히 딸려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ARD 콩쿠르 직후의 인터뷰처럼 이번에도 목표가 생각보다 소박했다. “피아노 외에 못하는 부분들을 채우고 싶어요. 예를 들면 무대 위에서 밝게 인사하는 거요. 저는 나름대로 웃었는데 선생님들께서 ‘너 많이 피곤하니?’ 하시더라고요. 하하”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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