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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학도 류경렬씨 “전쟁터에도 갔다 왔는데, 대학 앞에선 엄청 긴장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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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학도 류경렬씨 “전쟁터에도 갔다 왔는데, 대학 앞에선 엄청 긴장했죠”

입력
2018.03.06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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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앞에서 포즈를 취한 류경렬씨.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대학교 앞에서 포즈를 취한 류경렬씨.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6년 전, 류경렬(73)씨는 대구 달성군에 있는 한남고등학교 교문 어귀를 기웃거렸다. 지인이 그 학교에 입학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교문이나 구경하고 오자”는 생각으로 방문했다. 우연히 학교장을 마주쳤다. 그를 따라 교무실로 들어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입학을 권유받았다. 한남고등학교의 정식 교명은 대구한남미용고등학교로 학교 내에 한남성인중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2년 과정을 마치면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입학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저 같은 고령자도 입학자격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장 입학지원서를 썼죠. 그 덕에 못 배운 한을 풀었습니다.”

류씨는 달성군 다사에서 태어났다. 한창 공부할 나이에는 보릿고개가 한창이었다. 공부는 언감생심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월남전을 겪었다. 제대를 얼마 앞두고 장교로부터 “언제쯤 월남에 가게 될 것”이라는 귀띔을 해줬다. 집으로 돌아오자 주변에서 “돈 많이 벌었냐”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졌다. 한숨이 쏟아졌다. 언제 총탄이 날아와 심장을 꿰뚫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린 시간들이었다. 전투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저 “돈 벌러 갔다”는 인식이 너무 억울하게 느껴졌다.

“그 당시만 해도 군생활이 힘들었어요. 최전방은 혹독했죠. 이래 고생하나 저래 고생하나 매 한가지란 생각으로 월남전에 지원한 사람도 있었지만, 후방에 있던 저 같은 사람은 대부분 차출이었습니다. 이병이나 일병은 차출되는 당일에 통보했어요. 그 전날 환송 회식을 하면서도 누가 가는지 몰랐었죠. 돈도 좋지만 누가 목숨 걸고 돈 벌러 갑니까.”

류씨는 "젊은 시절 전쟁터까지 다녀왔지만, 대학교에 도전할 생각을 하니 긴장이 됐다"고 말했다.
류씨는 "젊은 시절 전쟁터까지 다녀왔지만, 대학교에 도전할 생각을 하니 긴장이 됐다"고 말했다.

결혼해서 3남매를 낳았다. 오토바이 판매, 수리 일을 하면서 자식들 짝을 찾아주고 나니 육십이 훌쩍 넘었다. 허리가 안 좋아서 두 번이나 수술을 했다. 가난과 전쟁, 가파른 경제성장기의 힘겨운 일상을 모두 버텨냈다.

이순을 넘기고 나니 “힘든 시기에 태어나서 한 세월 그럭저럭 잘 버텼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뿌듯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미련이 남았다. 공부였다. 그런 그에게 한남성인중고등학교는 말 그대로 동아줄 같은 존재였다. 처음엔 중학교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해 어쩌다 보니 교우들과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대학은 용기가 필요했다.

“의욕은 있는데 들으면 자꾸 잊어요. 수업이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빨려 드는데 나중에 기억이 잘 안 나요. 나이 들어 배우니 이런 한계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매 순간 했지요.”

시작한 김에 다닐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대학에 도전했다. 수성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응시원서를 냈다. 2년 동안 저녁마다 수업을 들으면서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공부는 힘들었죠. 명색이 대학이잖습니까. 그래도 좋았던 건 젊은 학우들 덕분이었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으면 언제 물어도 척척 대답을 해줬습니다. 공부를 통해 교감을 쌓는다는 게 어떤 교류보다 멋있고 근사하게 느껴졌습니다. 꿈같은 대학생활을 보냈습니다.”

다음 목표는 건강이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하려면 무엇보다 건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직 뚜렷한 진로는 정하지 않았지만 어떤 일이 주어지든 젊은이 못잖은 열정으로 뛰어들 생각이다.

“요즘은 산책을 자주 합니다.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디면서 건강도 끌어올리고 앞으로의 계획도 짜봅니다. 지금까지의 경륜과 새롭게 배운 내용을 더해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많이 하고 싶습니다. 그런 각오 자체가 배운 보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늦었다고 주저하지 않고 공부 시작하길 정말 잘했습니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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