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 3시간 만에 ‘속전속결’ 만남
일일이 악수하며 접견장 안내
리설주ㆍ김여정 등 만찬 총출동
둥근 테이블 앉아 남북 전면 접촉
김정은, 시종 웃음 띄우며 대화 주도
도중에 건배하며 친근함 드러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5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수석특사로 한 대북특별사절단을 파격적으로 환대했다. 김 위원장은 만찬에 부인 리설주와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까지 총출동시켜 남북 간 전면 접촉이 이뤄졌다.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김여정 특사 파견에 이은 김정은식 대화 공세의 하이라이트였다.
대북특사단을 맞이한 김 위원장의 행보는 거침 없었다. 북한 최고지도부의 심장부 격인 조선노동당 본관을 접견과 만찬 장소로 고른 게 대표적인 예다. 김 위원장의 집무실이 있는 노동당 청사는 우리의 청와대 격으로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조선중앙TV가 6일 공개한 영상에는 이례적인 장면들이 담겼다. 김 위원장과 김여정 부부장이 노동당 본관 로비에 서서 대북특사단을 맞이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대북특사단원들과 일일이 악수했고, 직접 접견장으로 안내했다. 정 실장은 접견장에서 문 대통령의 친서를 김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이어진 만찬에는 리설주와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 맹경일 통전부 부부장, 김창선 서기실장 등 김 위원장의 가족과 최측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접견을 통해 우리 측은 2011년 12월 사실상 북한 최고지도자 권좌에 김 위원장을 첫 대면했다. 이전에는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당시 파견한 조문단과의 상견례가 전부였다. 리설주가 우리 측 인사를 만난 것도 2005년 인천 아시아 육상선수권대회에 응원단으로 방남한 이후 처음이다.
이날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접견 사진에는 정 실장이 펜을 손에 쥐고 수첩을 편 채 김 위원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정 실장의 수첩에는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미 연합훈련으로 남북관계가 다시 단절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 ‘전략무기 전개’, ‘작년 핵ㆍ미사일 실험은 유일한 대응조치’, ‘다른 선택 無’, ‘새로운 명분 필요’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정 실장은 귀국 후 춘추관 기자회견에서 “(한미) 연합군사훈련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많다고 보고, 그 문제가 제기될 경우 이러한 요지로 북측을 설득해야겠다고 우리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적어놓은 것”이라고 했다.
만찬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김 위원장과 대북특사단은 꽃으로 장식된 둥근 테이블에 둘러 앉아 환하게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김 위원장은 만찬에서 대화를 주도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남측 인사들에게 다가가 잔을 부딪히는 등 친근함도 드러냈다. 만찬에는 포도주와 북한 전통주 등 4가지 종류의 술과 해물을 이용한 것으로 보이는 요리가 제공됐다. 김 위원장과 리설주는 만찬이 끝난 뒤 특사단 차량이 도착한 입구까지 나와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접견과 만찬은 오후 6시부터 오후 10시 12분까지 총 4시간 12분간 진행됐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방남한 김여정 부부장과 2시간 50분 동안 접견ㆍ오찬을 한 것에 비해서도 1시간 이상 길다. 대북특사단은 북한 언론을 통해 제한적으로만 알 수 있었던 김 위원장의 성격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얻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접견으로 김 위원장의 스타일이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과 다르다는 점도 드러났다. 김정일이 우리 측 특사의 귀국 직전 예고 없이 접견하거나 일정을 지연시키는 식의 ‘기싸움’을 벌인 반면, 김 위원장은 대북특사단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지 3시간 만에 접견과 만찬을 가졌다.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김 위원장의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6일 오전 김영철 부위원장 등과 실무회담을 가진 대북특사단은 이날 오후 5시 58분 성남공항을 통해 귀국해 문 대통령에게 회동 결과를 보고했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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