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이 열린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은 ‘미투(Me Too)’와 ‘다양성’에 대한 공감으로 가득했다. 시상식 참석자들은 너도나도 성폭력 반대 캠페인에 동참한다는 ‘타임스 업’(TIME’S UPㆍ성폭력 성차별 시대는 끝났다) 배지를 달고 나타나 관련 발언을 아끼지 않았다. 감독상 작품상 등 4관왕의 영예를 안은 ‘셰이프 오브 워터’는 언어장애가 있는 청소부와 수중 괴생명체의 사랑을 통해 소수자 차별을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는 멕시코 출신의 이민자였다.
▦ 수상 소감으로 특별히 주목받은 사람은 여우 주연상의 프랜시스 맥도먼드였다.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된 딸의 범인을 찾으려 고군분투하는 어머니를 연기한 맥도먼드는 수상 후보에 오른 여성 배우, 제작자, 프로듀서, 작가, 촬영감독, 작곡가, 의상 디자이너들을 일어서라고 한 뒤 “이들 모두가 말해야 하는 이야기와 프로젝트를 갖고 있다”며 그들에게 자금 지원을 호소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오늘 밤 마지막으로 두 단어를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inclusion rider’”.
▦ 생소한 이 말은 남가주대의 스테이시 스미스 박사가 2016년 TED 강연에서 제창했다고 한다. 스미스는 그해 미국 내 흥행 100위까지 영화를 조사했더니 대사 있는 흑인 또는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이 하나도 없는 작품이 48개, 대사 있는 아시아인이나 아시아계 미국여성이 등장하지 않는 영화가 70개, 장애여성이 나오지 않는 작품이 84개, 대사 있는 성소수자(LGBT)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 영화가 93개였다며 영화 캐스팅이 현실의 다양성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출연 계약 때 같이 연기할 배우와 제작진에 여성이나 유색 인종 등을 일정 비율로 포함시키도록 요구하는 ‘포용 특약(inclusion rider)’을 넣어 영화 제작의 다양성을 확보하자고 제안했다.
▦ 문제의식은 다르지만 ‘다양성’과 ‘포용’은 글로벌기업을 중심으로 기업문화로도 확산되고 있다. CEO나 CFO처럼 다양성과 포용을 책임지는 CDIO(Chief Diversity Inclusion Officer)를 두는 기업이 많아졌고 다양성이 높을수록 혁신적 상품을 개발할 가능성이 커 투자 가치가 있다며 D&I 지수까지 개발돼 있다. 경제도 문화도 차별 극복과 다양성 존중이 대세인 것 같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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