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밸리위 기부금 유용 의혹
거짓말 해명 되레 의혹만 키워
시의회 자료 제출 요구 또 묵살
시, “근거 없다”면서 현장 점검 ‘황당’
“관련자 덮어주고, 의회 묵살” 비판
광주시가 자동차산업밸리추진위원회의 기부금 사적 유용 의혹을 둘러싸고 광주시의회의 기부금 집행 내역 관련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하면서 불거진 감싸기 논란(본보 2월 21일자 22면)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거짓말과 석연찮은 설명으로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시는 지난 5일 시의회가 자동차밸리추진위의 기부금 세부 집행자료를 요구한 데 대해 “추진위에 기부금 세부 집행자료를 요청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추진위의 기부금 사적 유용 의혹을 제기했던 주경님 광주시의원이 이날 제265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5분 발언을 통해 “집행부가 자료 제출을 거부하며 의회를 기만하고 우롱하고 있다”며 광주시감사위원회에 담당 부서에 대한 직무감사를 요구하자 해명자료를 낸 것입니다. 시는 그러면서 “법인세법 시행령과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엔 지정기부금단체로 지정된 추진위에 시가 기부금 관련 자료를 요청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이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법인세법 시행령을 들먹인 시의 해명은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것입니다. 기부자들의 세제 혜택을 주기 위해 마련된 법인세법에 자치단체가 기부금단체를 지도ㆍ감독하도록 하는 규정이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죠.
기부금 자료 요청 권한과 관련한 내용은 ‘산업통상자원부장관 및 그 소속 청장 소관 비영리법인 설립 및 감독에 관한 규칙’에 담겨 있습니다. 이 규칙(제8조)엔 추진위와 같은 산자부장관 소관 비영리법인에 대한 설립 허가 및 지도ㆍ감독 권한을 위임 받은 시ㆍ도지사(광주시장)가 비영리법인(추진위) 사무의 검사와 감독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 비영리법인에 관계 서류, 장부, 그 밖의 참고 자료의 제출을 요구하거나 소속 공무원에게 비영리법인의 사무와 재산 상황을 검사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과연 시가 이런 규정을 몰랐을까요? 아닙니다. 시는 이미 2년 전 관계 법령을 검토한 뒤 이 규칙에 따라 추진위의 기부금 집행 내역을 점검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주무 과장은 “이 규칙은 ‘불가피한 경우’에 자료 요구를 할 수 있다고 제한하고 있는데, 이번 시의회의 기부금 자료 제출 요구는 불가피한 경우로 보기 어렵다”고 밝혀 사실상 자료 요청 근거 규정이 있다는 점을 시인했습니다. 그런데도 시는 “근거 규정이 없다”고 뻔한 거짓말을 했습니다.
더 황당한 건, “관계 법령에 근거가 없다”던 시가 2016년 11월과 지난달 26일 두 차례 추진위의 기부금 집행 내역 등을 점검했다는 점입니다. 시의 주장대로라면, 시가 ‘권한 없는 행정행위’를 한 셈인데, 이에 대한 해명은 어찌된 일인지 한 마디도 없습니다.
시가 교묘하게 사실을 은폐하려 한 정황도 있습니다. 실제 시는 주 의원의 5분 발언에 대한 내부 검토보고서를 통해 “추진위에 회계집행 관련 세부규칙은 있으나 규정 수준은 약소하다”고 ‘윗분들’에게 보고했습니다. 2016년 점검 당시 추진위가 기부금 집행 기준과 자체 회계규칙도 없이 기부금을 쓴 걸 시가 확인했다고 지적한 본보 보도에 대한 사실 확인 결과를 보고한 것이었죠.
하지만 2016년 현장 점검을 나간 시 관계자들은 “당시 점검 대상은 2015년도 기부금 집행 내역이었고, 그 때 추진위의 자체 회계 규칙은 없었다. 점검 이후로 (추진위가)보완했을 것”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추진위 관계자도 “추진위가 자체 예산집행 세부규칙을 마련한 것은 2016년 8월쯤이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백 번을 양보해 추진위 측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치더라도, 추진위가 2015년도 기부금 1억21만원을 집행할 당시(6~8월)엔 자체 회계규칙이 없었다는 사실은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이쯤 되면 과연 광주시가 왜 이렇게까지 무리수를 던지며 추진위를 감싸고 도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죠. 이미 시청 안팎에선 “시가 기부금 유용 의혹을 받고 있는 추진위 관계자를 감싸기 위해 대의기관인 시의회의 자료제출 요구도 묵살하며 문제를 흐지부지 덮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얼마 전 시의회의 자료 제출 요구에 손사래를 쳤던 광주시 주무 국장은 “오로지 광주를 위함임을 말씀 드린다”고 알아 듣기 힘든 말을 하기도 했죠. 도대체 무엇이 광주를 위한 것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작금의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뻔뻔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이게 기자만의 생각이길 바랄 뿐입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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