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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트럼프가 배척한 이민자ㆍ소수자 품다

입력
2018.03.05 17:52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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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이민자 출신 델 토로 감독

“예술은 모래 위 선을 지우는 것”

수상 소감서 反이민 정책 비판

동성애자 그린 ‘콜 미…’ 각색상

인종주의 비판 ‘겟 아웃’ 각본상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4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0회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으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후 트로피를 양 손에 들고 키스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4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0회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으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후 트로피를 양 손에 들고 키스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저는 이민자입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54) 감독은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아카데미상) 감독상 수상 소감에서 자신의 출신을 강조했다. 그는 “예술과 우리 산업(할리우드)이 하는 가장 위대한 일은 모래에 그어진 선들을 지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델 토로 감독은 “세상이 우리에게 그 선들을 더욱 깊게 하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걸 지우는 일을 지속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델 토로 감독은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나고 자랐다. 1997년 납치된 아버지가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도움으로 몸값 100만달러를 주고 풀려난 후 악몽을 떨치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델 토로 감독의 수상 소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진하는 반이민 정책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4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0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포용을 강조하며 다양성을 한껏 보여준 행사였다. 성소수자를 그린 영화를 아우르고, 여러 국가에서 온 감독과 배우를 품었다.

이날 시상식의 주인공은 델 토로 감독이었다. 그가 연출하고 제작한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셰이프 오브 워터’)은 감독상을 비롯해 작품상까지 거머쥐었다. 13개 부문 후보에 오른 ‘셰이프 오브 워터’는 미술상과 음악상도 받으며 4관왕이 됐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셰이프 오브 워터’의 작품상과 감독상 수상은 의미심장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이민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미국-멕시코 국경에 높이 9.15m 장벽 설치를 추진하고 있는데, 할리우드는 국가간, 인종간 장벽 제거를 새삼 선언했기 때문이다.

최근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멕시코 출신 감독들의 잔치였다. 델 토로 감독의 수상을 포함해 멕시코 출신 감독이 최근 5년 사이 4번 감독상을 차지했다. 2014년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감독상(‘그래비티’) 수상을 시작으로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2015년 ‘버드맨’으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2016년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감독상을 받았다. 델 토로, 쿠아론, 이냐리투 감독은 매우 가까운 친구 사이로 영화사 쓰리 아미고(세 명의 친구라는 뜻)를 공동 설립해 서로의 영화를 제작하고 기획하며 힘을 모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민자를 배척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 반면 할리우드는 이민자 전성기를 연 셈이다.

‘셰이프 오브 워터’가 품은 내용은 트럼프 시대 미국에 대한 우화로 읽힌다. 1960년대 냉전시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국가비밀연구소에서 일하는 언어장애 청소부 엘리자(샐리 호킨스)와 수중괴생명체의 사랑을 그린다. 성차별주의자이자 인종주의자인 연구소 보안책임자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가 이들의 사랑을 막는 장애물이다. 영화는 사회로부터 온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성소수자, 흑인여성을 등장시켜 세상의 편견과 불통을 에둘러 비판한다. 종을 뛰어넘는 사랑을 통해 소통과 포옹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AP통신은 “무시 당하는 2등 시민이 반란을 꾀하고 성공하는 이야기”라고 평가했다.

델 토로 감독의 영화 이력은 할리우드의 개방성과 역동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델 토로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은 1997년 ‘미믹’으로 제작자는 하비・밥 와인스틴 형제였다. 델 토로 감독은 연출할 당시 예술적 자율성이 제한되고, 모욕적인 처우를 받아 매우 기분 나쁜 작업으로 기억한다. 하비 와인스틴이 성폭력으로 몰락할 때 델 토로 감독은 할리우드 정상에 올랐다.

몰아주기 대신 상을 적절히 배분한 시상 결과도 아카데미상의 다양성 추구를 보여준다. 동성애자의 사랑을 그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각색상을, 미국 중산층의 인종주의를 비판한 ‘겟 아웃’의 흑인 감독 조던 필에게 각본상을 안겼다.

시상식에서는 반이민정책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도 나와 할리우드의 정서를 대변했다. 파키스탄 출신 배우 쿠마일 난지아니는 “우린(이민자) 꿈을 꾸는 사람들”이라며 “꿈을 꾸는 사람들이 할리우드와 미국의 기반”이라고 목소리를 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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