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좌파 포퓰리즘 ‘오성운동’ 33%
단일 원내 최대 정당으로 우뚝
우파 연합 ‘동맹’도 17% 득표
유권자 50%가 포퓰리즘 손 들어
유럽 통합 부정적 여론 커진 탓에
獨 기민ㆍ기사련, AfD 배제 대가로
6개월 걸려 사민당과 겨우 대연정
EU, 이민정책 개선 등 과제 산적
지난해 에마뉘엘 마크롱이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을 꺾고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만 해도 유럽의 ‘포퓰리즘 열풍’은 한풀 꺾이는 듯 보였다. 그러나 올들어 유럽연합(EU) 핵심국인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포퓰리즘이 다시 고개를 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독일에선 우파 정당의 영향력이 커진 가운데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중도 대연정 내각이 간신히 출범했고, 이탈리아 총선에선 포퓰리즘 정당들이 대약진했다. 중동에 이어 아프리카에서 넘어오는 이민자들에 대한 두려움, 악화하는 빈부격차 등의 문제에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기존의 중도ㆍ주류정치 세력에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국영 RAI방송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좌파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M5S)이 약 33%를 득표해 단일정당으로는 원내 최대 정당이 됐고 우파 연합에 참가한 포퓰리즘 정당 ‘동맹(La Legaㆍ구 북부동맹)’은 약 17%을 득표했다. 여타 반유럽 포퓰리즘 성향 정당을 합치면 전체 유권자의 50% 이상이 EU에 회의적인 포퓰리즘 정당에 투표한 것이다.
반면 주류 정당들은 부진했다. 동맹과 우파연합을 결성한 전진이탈리아당(FI)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를 앞세워 기세를 올렸으나 득표율 14%에 그쳤다. 현 집권당 민주당(PD)은 19%로 원내 제2당까지는 지켜냈지만, 좌파 연합이 도합 23%에 그치며 사실상 여당 지위 수성에 실패했다. 민주당 주요 인사들은 “완전한 패배”를 인정한 상태다.
이탈리아 의회는 아무도 다수당 지위를 얻지 못한 ‘헝(hung) 의회’가 됐고, 내각 구성을 위한 협상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차기 유력 총리 후보는 모두 포퓰리즘 정당에서 거론되고 있다. 동맹을 이끄는 마테오 살비니(44)는 동맹이 베를루스코니의 전진이탈리아보다 많은 의석을 확보하면 우파연합 총리 후보가 된다. 루이지 디마이오(31)가 이끄는 오성운동은 그간 다른 정당과의 연합을 거부해 왔지만, 소속 의원인 리카르도 프라카로는 “어떤 정당도 오성운동과 대화 없이 통치할 수 없다”라며 연정 협상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
이탈리아 총선 상황은 지난해 9월 독일 총선에서 양대 중도정당인 우파 기독민주ㆍ기독사회연합(CDU/CSU)과 좌파 사회민주당(SPD)이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포퓰리즘 정당 독일대안당(AfD)이 제3당으로 치고 올라선 것과 닮았다. 기민당 연합을 이끄는 메르켈 총리는 AfD와 손을 잡는 것을 배제한 대가로 총선 후 6개월이 지난 이달 4일에야 사민당 동의를 얻어 ‘대연정(GroKo)’ 내각을 수립할 수 있었다.
오성운동과 동맹, AfD의 정책 방향은 제각각이나 EU의 유럽 통합에 부정적인 여론과 유럽 밖에서 몰려드는 이민자에 대한 경계심을 타고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여기에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와 폴란드ㆍ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의 권위주의화 등이 겹치면서 EU의 원심력은 점점 커지는 추세다.
유럽 통합을 지지하는 기성 정당들은 이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고 이민정책의 문제점을 조속히 개선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실제 지난해 유럽 중도 승리의 상징인 마크롱 대통령은 4일 메르켈 총리와 협력해 EU 개혁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EU의 다른 한 축인 이탈리아의 연정 협상이 장기화하거나 포퓰리스트 총리가 집권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유럽 전역의 중도정치 세력은 새로운 난관을 맞이하고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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