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기관 “당국 지침은 방향 제시”
형평성 등 고려 정규직 고용 회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추진 중인 국책연구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반쪽 정책’에 그칠 거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국은 ‘비정규 연구직은 정규직 전환이 원칙’이라 거듭 밝히고 있지만, 다수 연구기관이 무기계약직 전환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4일 연구업계에 따르면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원자력의학원 등 상당수 국책 연구기관이 비정규직 연구원을 정규직이 아닌,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추혜선(정의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지자연의 제3회 전환심의위원회 회의 결과 문건을 보면, 지자연은 정규직 전환 직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연구원이나 원내 경쟁채용으로 선발된 비정규직 연구원은 모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이다. 내부 비정규직 연구원은 어떤 절차를 거치든 무기계약직으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반면 외부 공개채용자는 정규직으로 고용하기로 했다.
무기계약직 전환을 검토 중인 정부출연연구소의 한 비정규직 연구원은 “고용이 안정되는 것만으로 만족하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또 다른 비정규직 연구원은 “무기계약직은 정규직 연구원의 보조역할에만 머물 수밖에 없다”며 “좋은 일자리 창출ㆍ연구역량 강화라는 정규직 전환 방침의 기본취지에 맞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무기계약직 전환은 과기정통부가 지난해 10월 마련한 국책연구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전혀 언급되지 않은 내용이다. 과기정통부 고위 관계자는 “정규직 연구원과 동일ㆍ유사 업무를 수행하는 비정규직 연구원은 정규직 전환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1월 과기정통부는 국책연구기관에 ‘연구직은 정규직 전환이 원칙, 기술ㆍ행정직은 무기계약직 전환도 가능하다’는 내용의 추가 지침을 내려보내기도 했다. 한 출연연 인사 담당 관계자는 “과기정통부 지침은 어디까지나 방향을 제시한 수준”이라며 “강제성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고 밝혔다.
국책연구기관이 무기계약직 전환을 검토하는 건 형평성 때문이다. 이번 대책의 전환대상자 모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자니 기존 무기계약직과의 형평성이 대두되고, 연구직만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건 기술ㆍ행정직 등 다른 전환대상자의 불만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25개 출연연에서 정규직 전환 대상자에 해당하는 연구ㆍ기술ㆍ행정직 등 출연연 비정규직은 3,737명이다. 그리고 과거 비정규직이었다가 무기계약직으로 바뀐 180여명(기술ㆍ행정직)이 현재 출연연에 근무 중이다. 무기계약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80~90% 수준이다.
추 의원은 “정규직 전환 노력 없이 무기계약직 전환을 검토하는 연구기관도 문제지만, 정규직 전환 재원조차 마련하지 않은 채 정책을 추진해 ‘반쪽짜리 정규직 전환’ 사태를 불러온 과기정통부 역시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달까지 완료하겠다던 전환 일정 역시 미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연구기관이 무기계약직 전환을 골자로 전환계획을 마련해도 과기정통부와의 최종 협의과정에서 반려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환계획을 마련한 연구기관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 5곳에 불과하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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