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이어령이 1956년 5월 한국일보에‘우상의 파괴’라는 평론을 실었다. 문단이 발칵 뒤집혔다. 문단에서 교주나 왕처럼 군림하던 원로들을 우상으로 규정하고 신랄히 비판했기 때문이다. 문단의 황제 김동리는 ‘미몽의 우상’, 농촌문학의 대가 이무영은 ‘우매의 우상’으로 공격 받았다. 황순원, 서정주, 염상섭도 비판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이어령은 “그분들의 문학을 이상적인 모델로 만들고 그들의 제자가 되어 인준을 받아서 글을 쓴다면, 우리에게 젊음이란 존재하지 않고 새로운 창조는 나올 수 없다”고 했다.
▦ 근대 이전의 우상은 눈에 보이는 조상(彫像)의 형태로 등장했다. 중세 기독교의 우상파괴 운동은 이교도가 섬기는 조상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15세기 들어 프란시스 베이컨이 보이지 않는 우상에 도전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여서 편견이나 오류에 빠지기 쉽다. 인간 이성을 그르쳐 진실을 볼 수 없게 만드는 편견이나 선입견이 바로 ‘우상’이다. 베이컨은 우상을 네 가지 종류로 나눴는데, 그 중 권위나 전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생기는 편견이 ‘극장의 우상’이다. 바른 판단에 이르려면 극장의 우상을 깨뜨려야 한다.
▦ 1970년대 고교생 사이에 ‘대마초 피웠다’라는 은어가 유행했다. 대학 예비고사가 끝난 뒤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지는 친구를 칭하는 말이다. 75년 대마초 파동으로 가요계 우상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영향이었다. 당시 록의 대부 신중현, 가왕 조용필을 비롯해 이장희, 김추자, 윤형주, 채은옥 등이 형사 처벌과 함께 방송에서 퇴출됐다. 가요 PD들이 출연가수를 구하지 못해 애먹었을 정도다. 하지만 가요계는 금세 발랄하고 참신한 노래들로 채워졌다. 3형제 그룹 산울림과 대학가요제 출신 등 젊은 피가 대거 수혈됐기 때문이다.
▦ 미투 운동으로 문화권력의 추한 민낯이 드러났다. 이어령의 우상파괴는 청년세대가 부상하는 계기였다. 대마초 파동은 가요계 세대교체의 기폭제였다. 21세기 우상파괴의 주역은 세상의 절반인 여성이다. 늘 약자였던 여성들이 온몸을 던져 음습한 문화권력에 도전하고 있다. 굴종의 역사를 거부하는 첫 움직임이다.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새로운 우상을 만들어내고 숭배할 것이다. 그럼에도 권력이 만들어낸 일그러진 우상은 파괴돼야 한다. 완전한 남녀평등을 향한 도도한 역사의 흐름이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