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만드는 기계로 유명한
신개념 미술작가 빔 델보예
내달까지 한국서 첫 개인전
벨기에의 신개념미술(Neo-Conceptualism) 작가 빔 델보예가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얇게 저민 햄으로 대리석 문양을 재현하고 강철을 레이저로 커팅해 고딕풍 ‘좌약’을 만드는 그의 작업은, 전세계 예술가들이 벌이는 ‘우상 파괴’ 중 가장 고약한 축에 속한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27일 개막한 이번 전시에는 2017년 최신작을 포함해 조각, 사진 30여점이 선보였다. 첫 개인전을 맞아 한국을 찾은 작가는 스스로를 “감염된 불순함을 추구하는 작가”라고 소개했다.
“20세기 미술엔 단순한 것이 심오하다는 메시지가 깔려 있었습니다. 장식이 배제될수록 더 본질에 가깝다는 거죠. 저는 20세기 후반에 활동을 시작한 작가로서 내가 20세기에 기여할 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순수함을 추구했다면 저는 불순함을 추구합니다.”
델보예의 ‘불순함’은 단적으로 말하면 장식이다. 작가는 페라리, 마세라티 등 소위 슈퍼카의 동체에 이란 전통공예 장인들이 섬세하게 조각한 페르시아식 문양을 입혔다. 공사장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는 덤프트럭과 레미콘은 정교한 레이저 커팅을 통해 고딕풍의 조각으로 재탄생했다. 눈이 멀 정도로 화려한 장식은 한때 가깝게 지냈던 사물들과의 거리를 저만큼 벌려 놓는다.
델보예가 자신의 작업에 각국의 장인과 수공업자들을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그가 말하는 불순함은 협업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번 전시엔 나오지 않았지만 작가를 유명하게 만든 작품 중 하나인 ‘클로아카(cloaca)’는 똥 만드는 기계다. 인간의 소화기관을 그대로 재현, 진짜 배설물을 싸내는 이 기계를 만들기 위해 그는 과학자, 디자이너, 컴퓨터 기술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했다. 한 명의 뛰어난 천재에게 모든 찬사와 존경을 바치고 싶어하는 대중의 오랜 욕망에 델보예는 가벼운 조소를 날린다.
낯선 나라 장인들과의 협업이 늘 원활하진 않다. 그는 20여 전 인도네시아의 수공업자에게 나무로 레미콘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가 “대체 왜 그런 쓸데 없는 걸 만들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이런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며 “어쩌면 내가 그들의 마지막 의뢰자일 것”이라고 씁쓸하게 웃었다.
예술계의 기존 가치 체계를 비웃는다는 점에서 델보예의 작품에는 마르셀 뒤샹의 ‘변기’나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를 떠올리게 하는 측면이 있다. 미술 비평가이자 독립 큐레이터인 헤라르도 모스케라는 “앤디 워홀이 대중문화에서 차용한 사물과 이미지를 ‘고급’ 문화로 정당화했다면, 델보예는 서민적인 사물에 ‘고급’ 문화의 장식물을 덧붙여 상징적으로 ‘승격’시킨다”며 “델보예의 예술적 전략은 사물이 제자리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똥이 제자리를 벗어날 때 우리의 세계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그는 똥을 비롯한 값싼 일상의 사물들을 작품에 주로 차용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예술로 생각하지 않는 것일수록 꼭 작품에 쓰고 싶다”고 말했다. “제가 주목하는 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모두에게 평등한 민주주의적인 물건들입니다. 트랙터, 다리미, 삽, 햄 등을 통해 일상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일상이 될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전시는 4월 8일까지 열린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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