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전문인력이 주민 3명과
함께 가게 운영하며 자활 도와
“주민들 삶의 활력 되찾아”
“꽃을 만지고 있으면 잡생각이 싹 사라져요.”
최인엽(58)씨가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중림종합사회복지관 2층에 자리한 ‘꽃피우다’ 매장에서 프리저브드 플라워(특수 보존 처리한 생화)를 카드에 붙이며 말했다. “성격이 급하고 욱하는 성질이 있었는데 3년 했더니 성격이 많이 바뀌었어요. 마음이 정화됐다고나 할까? 꽃 들어오는 날 향기는 또 얼마나 기가 막히게 좋은데요.”
최씨 맞은 편에서 같은 작업에 열중하고 있던 강선숙(64)씨가 “꽃 싫어하는 사람 있게요?”라고 거들었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또 다른 멤버 진종열(58)씨는 “다른 것보다 여기서 매일 모여서 일을 하니까 식구 같아서 좋다”고 웃었다.
이들의 소중한 일터 ‘꽃피우다’는 2014년 시작한 중구의 지역공동체 일자리 사업이다. 전문 인력인 플로리스트 1인과 관내 저소득층 주민 3인이 함께 꽃집을 운영한다. 저소득층 자활을 돕는 공공일자리로, 가급적 쪽방 거주민에게 우선적으로 사업 참여의 기회를 준다. 1년 중 9개월은 정부에서 인건비를 지원 받고 나머지 3개월 인건비는 1년 매출액으로 자체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꽃을 사는 비용이나 매장 관리비도 가게 수입으로 충당한다.
‘꽃피우다’의 특징은 단순 노동이 대부분인 기존 공공일자리의 한계에서 벗어나 지속적인 교육과 실습으로 실질적인 근로 능력 향상을 도모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업 참여자들은 이곳에서 교육생과 점원의 두 가지 역할을 한다. 평소에는 플로리스트에게 꽃과 화분에 대한 기초 지식부터 관리법, 제작, 포장, 배달 등 관련 기술을 익힌다. 그러다 주문이 들어오면 점원으로 변신해 제작에서 배달까지 일사불란하게 처리한다.
교육과 전반적인 가게 운영을 맡고 있는 플로리스트 김정미(48)씨는 “배운 것을 바로 현장에 적용하니 체득이 빠른 것 같다”며 “가장 오래된 최인엽 간사님은 이제는 웬만한 젊은 꽃 전공자 보다 실력이 뛰어나다”고 치켜세웠다.
실제로 사업 시작 이후 작업장을 거쳐간 25명 중 2명이 이곳에서 배운 기술로 관련 업종에 취업했다. 많은 쪽방 주민들이 만성적인 음주 문제나 근로 의지 부족으로 자립에 실패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성과다.
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 특성상 입 소문이 나면서 매출액도 껑충 뛰었다. 사업 시작 3년 만에 연 매출액 5,900만원(2016년)을 찍으며 첫 해(2,700만원)의 2배 수입을 올렸다. 지난해 ‘김영란법’이 화훼 시장에 타격을 주면서 매출액은 반 토막 났지만 여전히 매달 200만원 이상의 안정적인 실적을 거두고 있다. 판매 품목도 다각화했다. 사업 초기 꽃다발이나 화분에 한정돼 있던 것이 이제는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힘입어 꽃 카드, 다육, 드라이 플라워, 스칸디아모스(순록이끼) 등 여러 종류로 확대됐다.
중구 관계자는 “열등감과 패배감에 젖어 있던 쪽방촌 주민들이 꽃으로 삶의 활력과 의욕을 되찾고 있다”며 “이 사업을 계속해서 쪽방에 대한 외부 인식을 개선하고 주민들의 진정한 자립을 도모하겠다”고 말했다.
글ㆍ사진=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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