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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미투(Me Too)’ 무풍지대인 이유는

입력
2018.03.0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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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처벌 완화돼 여성 발언권 약화

뼈 안 부러지면 15일 구류나 벌금 처분

“남성들 범죄를 범죄로 인식하지 않게 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성폭력 고발 운동 ‘미투(#MeTooㆍ나도 당했다)’가 전 세계로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지만 러시아에서만큼은 아직까지 두드러진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러시아 여성들은 미투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일까.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해 러시아에서 도입된 ‘가정 폭력 처벌 완화법’ 등이 러시아판 미투 운동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 전통을 명분으로 앞세워 고수하고 있는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가 러시아를 ‘미투’ 무풍지대로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2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된 가정 폭력 처벌 완화법에 따르면 배우자나 자녀를 폭행해도 1년에 1회만 폭력을 행사하고 그 결과 뼈는 부러지지 않고 멍이 들거나 피가 났다면 15일 구류나 벌금 처분을 받는다. 기존 가정법에서는 가정 폭력이 최대 2년형을 선고 받는 범죄였다. 재범일 경우 실형을 살 수 있지만 가정 폭력이 만연한 러시아에서 오히려 처벌 수위를 낮췄다는 점에서 논란을 샀다.

워싱턴포스트는 푸틴 정부의 이러한 가부장적인 기조가 미투 운동 발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러시아 전통 가치’를 앞세워 여성의 발언권을 약화시키고 보호 범위마저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러시아 내무부에 따르면 하루 40명, 한 해 1만 4,000명에 달하는 여성이 가정 폭력으로 사망한다. 또 가정 폭력을 경험하는 여성은 매년 60만명에 이른다. 가정 폭력 피해 여성 중 60~70%가 신고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감안하면 실제 피해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가정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러시아의 종교ㆍ문화적 통념은 해당 법안의 통과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투 운동이 싹트기는 쉽지 않다. 러시아의 가정 폭력 피해 여성 보호 시설 키테즈 책임자인 알료나 사디코바는 “사람들은 점점 (신고해도) 처벌이 없을 것 같다고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나데즈다 자모타예바 모스크바 성폭력 회복 센터 소장은 “정부가 가해자들의 범죄 행위를 범죄라고 부르는 것을 중단했다”며 “(가정 폭력 처벌 완화법으로) 가해자는 더 이상 스스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고 주장했다.

한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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