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연인관계” “호감 기반” 변명
묵묵부답ㆍ입장 번복하는 사례도
‘미투(#MeTooㆍ나도 당했다)’ 폭로를 통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공개 사과문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당사자와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호감을 기반으로 한 행동이었다거나, 그 당시 잘못인 줄 알지 못했다는 변명이 섞인 반쪽 짜리 사과라는 지탄을 받고 있다.
이성적인 호감 때문이었다는 해명은 폭로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안긴다. 심지어 연인 관계일지라도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는 성관계는 처벌 대상이다. 지난달 28일 두 명의 피해자를 직접 언급하며 사과문을 발표한 배우 오달수씨는 성폭행 의혹에 대해 “25년 전 잠시나마 연애감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사과문을 낸 김태훈 전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도 성폭행 의혹에 대해서는 “2001년까지 여성분과 사귀는 관계였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해당 여성과 남녀관계를 맺을 때 “당시 저는 배우자가 있는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고 비난 받아 마땅한 행동을 한 것"이라며 여성의 부도덕성도 함께 드러내는 듯한 말을 덧붙였다. 성추행 의혹에는 “당시 배우자와 사별한 지 오래 돼 서로간의 호감의 정도를 잘못 이해하고 행동”했다며 ‘호감’에 기반한 행동이었다고 했다. 지난달 19일 공개 사과를 했던 이윤택 연극연출가도 “성추행은 인정하지만 성폭행은 인정할 수 없다”며 “물리적 폭력을 사용하지 않은 합의된 관계”였다고 주장해 비판 받았다.
피해자들은 이러한 사과를 진정한 사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윤택 연출가의 성추행을 처음 폭로해 연극계 미투 운동을 촉발한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는 이 연출가의 공개 사과 뒤 “성관계였다고 말하는 그 입에 똥물을 부어주고 싶다”고 강하기 비판했다. 오달수씨의 성폭력 혐의를 폭로한 피해자들은 “변명에 불과하다”, “나에게 사과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자신의 잘못을 두루뭉실하게 표현하고, 사과의 대상을 피해자가 아닌 대중으로 삼는 사과문의 형태도 진정한 반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비판 대상이다. 최일화 한국연극배우협회 이사장은 “당시엔 그것이 잘못인지도 몰랐던, 가볍게 생각했던, 저의 무지와 인식을 통렬히 반성한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잘못을 명시하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거나 입장을 번복하는 경우도 있다. 이윤택 연출가와 함께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하용부 인간문화재는 “잇따라 제기된 성추문은 모두 제가 잘못 살아온 결과물로 모든 걸 인정하고 다 내려놓겠다"고 말했다가 “성폭행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입장을 바꿨다. 오태석 연극연출가는 지난달 21일 자신의 실명 보도가 나간 이후 현재까지도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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