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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톤 제상철 “세상 모든 노래가 ‘평화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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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톤 제상철 “세상 모든 노래가 ‘평화의 기도’입니다”

입력
2018.03.02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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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톤 제상철
바리톤 제상철

나는 한 곡의 노래로 내 인생을 결정했다. ‘숭실OB합창단’이 부른 ‘평화의 기도’였다. 중학교 때 그 곡을 듣고 내 인생을 노래에 바치기로 결심했다.

고등학교 때 중창단에 들어가 활동하면서 성악과 진학을 준비했다. 대학 생활은 성공적이었다.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불렀고, 주변에서도 인정을 해줬다. 1997년 대학교 개교 50주년 기념 오페라 공연에서 학생 대표로 주역을 따냈다. 그때 내 꿈을 정했다. 오페라 가수가 되기로.

졸업과 동시에 미국으로 떠났다. 유럽으로 가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허락하지 않았다. 템플대 석사 과정을 선택했다. 필레델피아에 작은아버지가 계신 것도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는 “작은집에서 살면 적응하기가 괜찮을 것”이라고 하셨다.

사실은 나보다 부모님의 적응이 더 큰 문제였다. 내가 유학을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이 미국으로 오셨다. 세관에서 근무하셨던 아버지는 “국민이 내는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미국 이민을 택하신 거였다.

부모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그저 공부만 하면 그만이었지만, 이젠 숙제가 하나 더 늘었다. 부모님을 도와야 했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세탁소 문을 열고 손님을 받았다. 손님맞이가 끝나면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었고, 오후 3시에 다시 세탁소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 끝이 아니었다. 부모님은 세탁소 외에도 청소업에도 뛰어들었다. 부모님을 따라 다시 청소일을 했다. 하루에 4시간밖에 못 자는 생활을 3년 동안 지속했다. 그 사이 부모님의 영어실력도 늘고 동생들도 적응을 하면서 나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학교도 만만치 않았다. 제일 좋았던 기억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깐깐한 교수님에게 수업을 받을 때였다. 존 더글라스 교수가 바로 그 ‘깐깐 교수님’이었다. 수업에 들어가면 굉장히 많은 지적을 받았다. 1시간 동안 두 단락을 넘어가기 힘들 때도 있었다. 음악에 대한 자세도 엄격하게 가르치셨다. 혹독하게 수업을 진행했지만, 레슨실 밖으로 나오면 자상한 아버지 같았다. 학교생활을 하는데 있어 힘든 부분들, 특히 행정적인 일 처리 등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보살펴주셨다. 따뜻한 마음과 차가운 머리를 가진 스승이었다. 지금도 그분을 떠올리면 고개가 숙여진다.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노래와 연관이 있다. 내가 유학할 당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전용 홀인 킴멜 센터를 짓고 있었다. 학교를 오가면서 “저 극장에 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저 무대에 설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꿈은 이루어졌다. 졸업하기 2년 전인 2002년, 극장에 초청되어 단독으로 노래를 불렀다. 내 노래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행복한 기억이다.

귀국한 뒤로는 제자를 키우고 오페라의 저변을 넓히는 일에 힘쓰고 있다. 그중 가장 애정을 쏟고 있는 단체가 ‘고성방가’다. 원래는 이현 교수가 천마아트홀 관장을 맡고 있을 때 만든 아마추어 오페라 팀이었지만, 내가 맡아서 팀을 꾸리다가 지금은 학교에서 독립해 시내에서 모임을 가지고 있다. 5명에서 시작해 20명으로 늘었다. 의사, 공무원 등 대부분 전문직에 종사하는 분들이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프로 못잖다. 뜨거운 열정에 나 자신을 돌아볼 때가 있을 정도다.

‘평화의 기도’가 좋아 노래를 시작했다. 그 기도는 이루어졌다. 노래 자체가 평화라는 걸 깨달았다. ‘고성방가’ 팀을 지도하고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노래 자체가 평화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노래할 때 가장 행복해 보이는 그들이다.

중학교 2학년 때 내 마음을 뒤흔든 ‘평화의 기도’가 결국 내 삶을 통해 이루어져가고 있는 셈이다. ‘평화의 기도’ 혹은 그 노래로 말미암아 알게 된 모든 노래가 내 인생의 히트곡이다.

<바리톤 제상철 예술감독의 구술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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