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강업계도 ‘발등의 불’
한국 철강수출 미국 시장이 3위
가격 경쟁력 뚝, 수출 차질 불가피
강관 비중 높은 중견기업 더 타격
美 현지 공장설립 이외 대안 없어
철강기업 ‘코리아 엑소더스’ 우려
“확정 전에 우호세력 접촉할 것”
정부도 뾰족한 대책은 못 내놔
한국산 철강제품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이 수입하는 미국에서 날아온 ‘관세 폭탄’에 국내 철강업계가 휘청거리고 있다. 애초 우려했던 ‘최악의 시나리오(한국 등 12개국에 53% 관세 부과)’는 피했다지만, 25%의 일률 관세만으로도 대거 수출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당장 우리 수출품의 절반 이상인 ‘강관’ 분야 충격이 예상되는 가운데, 대규모 실업, 업계 전반 매출하락 등 도미노 악재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2일 국제금융센터와 관세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철강제품의 대미 수출 비중(11.2%)은 아시아(63%), 유럽(14%)에 이어 전체 해외시장 중 3위를 기록했다. 미국이 수년간 관세 부과 등으로 무역장벽을 높이면서 대미 수출비중이 소폭 줄어들긴 했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무시하기 어려운 수출시장이다.
미국은 한국산 철강재 품목 88%에 이미 고율의 반덤핑ㆍ상계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여기에 25%의 관세가 추가될 경우 국내 철강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악화할 수밖에 없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지만, 대미 의존도가 높은 중견 철강기업을 중심으로 상당한 충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실제 중견 철강사 가운데 넥스틸은 전체 생산량의 90%, 세아제강은 70%, 휴스틸은 40%를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생산품목 가운데는 지난해 대미 수출의 50.1%(198만8,000톤)을 차지한 강관이 최대 피해품목으로 꼽힌다. 원유나 셰일가스 채취에 사용하는 ‘유정용 강관’(OCTG)은 국내 수요가 없어 대부분 미국으로 수출된다. 이미 지난달 송유관에 고율 관세를 부과 받은 세아제강, 넥스틸 등 업체에게 25% 관세가 더해지면 세아제강 제품엔 30%, 넥스틸은 70%까지 관세율이 오른다. 앞서 미국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연례재심 예비판정에서 유정용 강관에 최대 46.37%(넥스틸)의 관세를 부과했다. 현재 톤당 1,100달러(약 120만원) 수준인 유정용 강관의 수출가격이 최대 2,000달러(220만원)를 넘을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국의 관세폭탄은 국내 철강기업들의 ‘코리아 엑소더스’를 부를 수도 있다. 실제 휴스틸은 미국의 철강관세 부과에 따른 사업성 우려로 최근 전남 여수에 짓던 생산공장 건립을 포기했다. 넥스틸은 약 400억원을 들여 미국 휴스턴에 현지 생산공장을 세울 계획이고, 세아제강도 지난 2016년 인수한 미국 현지 생산법인 활용도를 높일 것으로 알려졌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단 연구위원은 “강관은 수출시장 다변화가 가능한 품목도 아니어서 국내 업체들의 유일한 대안은 사실상 미국 현지공장 설립밖에 없다”며 “국내 소규모 협력업체들까지 포함하면 철강업계의 피해는 예상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각에선 대규모 실업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규직(4만3,624명) 대비 비정규직(3만5,601명) 비율(82.6%)이 유독 높은 철강업계에서 미국 수출길이 막히면 구조조정이 쉬운 비정규직 대량해고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미 수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포스코(약 3%) 등 대형업체도 철강재 공급 등에 연쇄적인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정부는 이날 긴급 대책회의를 가졌지만 뾰족한 대책은 내놓지 못했다. 백운규 장관 주재로 긴급 회의를 연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내 산업 피해 최소화를 위해 미국 정부의 최종 결정 전까지 아웃리치(우호세력 접촉) 활동을 강화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김현우 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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