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리카는 2015년, 자국의 모든 동물원을 없애기로 발표했다. 야생동물들을 철창에 가두고 관람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생태적으로 옳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코스타리카보다 훨씬 먼저 동물원 동물들을 해방시킨 나라가 바로 부탄이다. 부탄은 1970년대에 동물원을 만들었으나, 동물을 가둬서는 안 된다는 부탄 사람들의 가치관과 국왕의 지시에 따라 동물원 운영을 중단했다.
지난 여름 부탄 여행 중 수도 팀부에 있는 ‘왕립 타킨 보전센터’를 방문했다. 동물원을 나라의 상징동물인 타킨을 보호하는 센터로 바꾼 곳이다. 야생으로 돌려보내지 못한 길들여진 개체들을 사육하고 있다는 게 여행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히말라야의 고원에서 살아가는 타킨은 얼굴은 양을, 몸은 소와 닮았다. 울타리가 쳐있지만 나무와 풀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어우러진 넓은 방사장에서 타킨 십여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풀을 뜯었다.
다음날, 팀부에 있는 산에 올랐다. 거대한 아름드리나무들이 있는 숲을 두어 시간 오르니 목적지였던 고찰이 나타났다. 벼랑 끝에 세워진 수백 년 된 절에서 한 스님이 주신 달콤한 주스를 마시며 숨을 고르는데, 절 아래 산등성이에 염소 비슷한 동물이 풀을 뜯고 있다. 설마 산양? 망원경으로 보니 정말 산양이다! 설악산에 사는 아무르 산양보다는 개체수가 많지만, 그래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준위협종’으로 등재된 귀하신 몸. 히말라야 산양을 대낮에 코앞에서 ‘친견’하다니. 이런 영광이.
시야가 트인 풀밭이었기에 산양은 지척에 사람이 있다는 걸 분명 알고 있다. 그런데도 산양은 태평하게 풀을 뜯는 게 아닌가. 동반자 김영준 수의사가 사진을 찍기 위해 천천히 산양에게 다가갔다.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워낙 인간에게 많이 시달려서 절대로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한국의 산양과 달리, 부탄의 산양은 사람이 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간격이 마침내 3m로 좁혀졌을 때, 산양은 고개를 들어 천천히 뒤로 걸어갔다. 두려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식사를 방해한 인간이 귀찮아서 피하는 느낌이었다. 야생동물이 사람을 보면 달아나는 모습만 봤던 내게, 무려 3m까지 접근을 허락하는 히말라야 산양과의 만남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살생을 금하고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불교 왕국에서, 인간과 야생동물의 ‘오래된 미래’는 이렇게 현존하고 있었다.
인간과 야생동물의 ‘적정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 야생동물에게 위협적인 문화에선 그 거리가 너무 멀고, 야생동물을 눈요깃감이나 애완동물로 오용하는 문화에선 그 거리가 지나치게 가깝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까무러치게 놀라 도망치지도, 그렇다고 속박되지도 않는 적당한 거리, 적당한 신뢰. 혹은 이 별에서 인간이 야생동물과 형성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관계를 부탄에서 보았다.
글ㆍ사진= 황윤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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