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섞지 말아라.”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국제기구의 인권침해 현장 조사를 앞두고 일선 경찰들에게 ‘초간단 대응 지침’을 내렸다. 유엔 국제형사재판소(ICC)가 필리핀의 마약사범 즉결처형 범죄 혐의와 관련해 최근 예비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나온 조치다.
2일 현지 매체 래플러 및 외신 등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은 전날 남부 다바오시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마약 유혈소탕전을 둘러싼 인권침해 논란과 관련, 유엔 인권기구의 조사를 무시하라고 경찰에 지시했다. 그는 “인권 조사관들이나 보고관들이 오면 대답하지 말고, 말을 걸지도 말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왜 우리가 그들 물음에 답해야 하냐”며 인권 조사관들이 자신의 국가 운영에 개입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여러분들은 마약이 필리핀을 집어삼키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냐”며 그가 펼치고 있는 마약과의 유혈전쟁에 대한 당위성도 강조했다.
앞서 알란 카예타노 필리핀 외무장관은 유엔인권이사회(UNHRC)에 필리핀의 마약사범 소탕 문제를 정치 이슈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칼라마르드 유엔 인권 최고대표사무소(UNOHCHR) 특별보고관의 조사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도 전달했다.
칼라마르드 특별보고관은 공개적으로 두테르테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한 인물이다. 지난해 11월 두테르테 대통령은 마약과의 전쟁을 언급하면서 “인권주의자들이 나를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유감”이라며 칼라마르드 특별보고관을 우회적으로 비판했고, 이에 유엔 인권 최고대표사무소가 “두테르테 대통령이 칼라마르드 특별보고관을 위협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필리핀 현지에서 인권 실태를 조사하려던 칼라마르드 특별보고관은 필리핀 정부가 토론회 개최 등의 조건을 내걸자, 이를 거부하다가 개인자격으로 필리핀을 기습 방문, 마닐라대에서 강연을 하는 등 필리핀 정부에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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