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일맨’ 정세균 국회의장도 끝내 폭발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11시 57분 6ㆍ13 지방선거에 적용할 선거구획정안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본회의 처리가 끝내 무산되자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2월 임시국회 회기 마지막 날인 탓에 자정을 넘기면 본회의를 열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참으로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유감을 표했다. 자정이 다 될 때까지 법안 처리를 위해 본회의장을 지켰던 의원들 사이에서도 “아이고”라는 자조 섞인 한탄이 쏟아졌다.
국회는 선거구획정 법정시한을 78일이나 넘긴 이날도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당장 2일로 예정된 시ㆍ도의원 예비후보자등록 신청부터 혼란이 불가피하다. 법을 만드는 국회 스스로 위법 상태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이 본회의에 앞서 열린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위 전체회의에서 ‘몽니’를 부리면서 제동이 걸렸다. 안상수 의원은 과거 자신의 지역구였다가 지금은 바로 옆 지역이 된 인천 서구의 광역의원 정수가 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뒤늦게 선거구획정의 원칙을 문제 삼았다. 나경원 의원은 여야 원내지도부의 일방적 합의라며 가세했다. 참다 못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수많은 날들 다 놔두고 지금 이 밤중에 원점에서 다시 토론하면 끝이 없다”고 제지에 나섰지만 허사였다. 결국 회의는 밤 11시쯤 정회됐다.
선거구획정 원칙을 거론하며 개정안 통과를 막았던 의원들은 정작 본회의 산회 후 5분여 만에 새로 소집된 헌정특위에서는 이렇다 할 반대를 하지 않았다. 결국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1일 0시 5분에 헌정특위 전체회의를 통과했지만, 국회 회기가 지난 다음이었다.
국회가 선거구획정 문제를 놓고 무법상태를 초래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진행된 선거구획정 당시에는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으로 선거구 공백 사태라는 초유의 상황을 59일 가까이 끌고서야 총선을 45일 앞두고 겨우 획정안을 의결했다. 그마저도 지역구 의석 수를 7석 늘리는 타협안이었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서는 여상규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의원회관 주차장에서 정개특위 간사인 주성영 의원과 육박전까지 벌이며 지역구를 사수했다.
선거구획정과 관련한 적폐를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 이해 당사자인 국회의원에게 선거구획정 문제를 맡기지 말아야 한다는 데는 이미 사회적으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학계에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상설 선거구획정위를 둬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롭게 하자는 구체적 해법도 이미 나와 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두고 4년마다 속태우는 일은 더는 말자.
이동현 정치부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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