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왜곡 논란은 여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문제의 70%를 한국교육방송(EBS) 교재ㆍ강의와 연계해 출제하는 정부 입시 정책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첫 판단이 나왔다. 연계 출제가 교육 수요자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취지지만, 해당 정책이 공교육을 왜곡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고 교육 당국도 연계율 축소를 언급한 터라 논란은 쉽게 잦아들지 않을 전망이다.
헌재는 수능시험 문제 70%(문항 수 기준)를 EBS 수능 교재 및 강의와 연계해 출제한다는 내용의 ‘2018학년도 수능시행 시행기본계획’이 교육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며 지난달 22일 당시 고교 3학년 권모ㆍ허모씨가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고 1일 밝혔다. 권씨 등은 “학교 수업에서 EBS 교재가 교과서를 대신해 학생 창의성이나 비판적 사고력을 발달시키기 어렵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이런 주장에 “수능 기본계획이 다른 학습방법이나 사교육을 금지하지 않고 학생들도 다양한 학습방법을 택해 공부할 수 있어 심각하게 기본권을 제한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시험을 EBS 교재와 높은 비율로 연계하면 의존도가 높아져 사교육 과열을 어느 정도 진정시킬 수 있다”며 입법 목적의 정당성도 인정했다.
헌재 결정에도 수능-EBS 연계 정책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이 정책은 2004년 사교육 절감과 교육격차 해소를 목적으로 도입됐다. 당시 30% 수준이었던 연계율은 2010년 70%로 껑충 뛴 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연계율이 워낙 높다 보니 당초 정책 취지와 달리 학교 수업이 EBS 문제풀이 시간으로 변질돼 공교육을 파행으로 몰고 갔다는 불만이 많아졌다. 지난달 열린 ‘대입제도 개편을 위한 대입정책 포럼’에서 안성환 서울 대진고 교사는 “일선 학교에서 평가 계획을 세울 때 교과서 중심으로 진도표를 작성하지만 실제로는 EBS 교재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도 지난해 7월 인사청문회에서 “EBS 수능 연계율은 재검토해야 할 문제”라며 수술 필요성을 언급했었다.
교육부는 일단 2021학년도까지 현행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8월 중 2022학년도부터 적용되는 대입제도 종합 개편안이 나오는 만큼 수능 대책과 함께 EBS 연계율 조정 방침도 같이 내놓겠다”고 말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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