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백범 김구 묘소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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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백범 김구 묘소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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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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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와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묘역이 있는 효창공원은 수난의 대상이었다. 백범의 정적이던 이승만 대통령은 1959년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유치를 빌미로 효창공원에 축구장을 지으라고 지시했다. 백범 묘소를 이장하라는 얘기였다. 여론의 반대로 묘소 이전은 보류됐지만 15만 그루의 나무를 베고 연못을 메워 1960년 효창운동장이 개장됐다. 박정희 대통령도 항일의 상징인 효창공원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묘역을 없애고 골프장을 지으려다 유족들 반대로 뜻을 접고는 북한반공투사위령탑 등 어울리지 않는 기념물을 잇따라 세웠다.

▦ 더불어민주당이 효창공원 독립운동가들의 묘소를 내년 3ㆍ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국립현충원으로 옮긴다는 구상을 밝혔다. 모두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 주역들인데 국가적 차원의 참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효창공원에는 김구 선생 외에도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3의사 묘소와 유해를 찾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가묘, 이동녕, 조성환, 차이석 등 임시정부 요인들의 묘소가 있다. 일부 집권세력의 무관심과 외면, 적극적 상징 지우기 행태를 떠올리면 뒤늦은 감마저 든다.

▦ 반면 효창공원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해 이장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효창공원의 옛 이름은 효창원으로 조선 왕가의 묘역이었으나, 일제는 1924년 왕실 무덤을 옮긴 뒤 이곳을 공원으로 조성하고 근처에 유곽도 만들었다. 해방 후 환국한 백범이 항일운동의 상징으로 효창공원을 주목하고 직접 독립운동가 묘역을 조성한 것도 이런 역사적 맥락과 닿아있다. 백범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효창공원 동지들 곁에 묻어달라는 유훈을 남겼고, 1949년 암살된 뒤 이곳에 묻혔다.

▦ 대안으로 효창공원의 국립묘지 승격이 거론된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엔 효창운동장을 용산 미군기지 터로 옮기고 ‘효창독립공원’으로 성역화하는 계획이 마련됐으나 축구계의 반대로 좌초했다. 2013년에는 효창공원을 국립묘지로 승격 지정하는 법안이 발의됐으나 공원의 자유로운 이용과 집값 하락 우려도 있다는 지역주민들 반발로 폐기되기도 했다. 사적과 근린공원으로 지정돼 ‘공원’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현재의 모습은 부끄럽다. 공론화를 거쳐 올바른 예우 방법을 모색하는 게 후손들로서의 도리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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