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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정ㆍ영미, 대학내내 주말 전부를 컬링에 바쳤다”

입력
2018.03.01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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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킴 가르친 김경석 교사

평창올림픽 여자 컬링에서 은메달을 딴 선수들이 관중들에게 손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은정, 김경애, 김선영, 김영미, 김초희. 강릉=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평창올림픽 여자 컬링에서 은메달을 딴 선수들이 관중들에게 손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은정, 김경애, 김선영, 김영미, 김초희. 강릉=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인구 5만 명의 작은 소도시 경북 의성에서 같은 학교를 다닌 선후배, 친구들이 방과 후 활동으로 컬링을 시작해 세계 정상에 섰다. 평창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여자 컬링 대표팀이 ‘신데델라’로 불리는 이유다. ‘팀 킴(Team Kim)’ 5명 중 막내 김초희(22)를 뺀 스킵 김은정(28), 리드 김영미(27), 세컨드 김선영(25), 서드 김경애(24)가 의성여고 출신이다.

그러나 12년 전 의성여고에서 이들에게 컬링을 처음 가르친 김경석(53) 신라중 교사는 “제자들이 대견하지만 동화 같은 스토리에만 초점이 맞춰져 그들의 치열한 노력이 희석된 건 조금 아쉽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1990년대 한국에 컬링을 처음 들여온 김경두(62)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회장의 동생이다. 그 역시 형을 따라 일찌감치 컬링을 배웠다. 의성에 컬링 전용 훈련장이 생긴 2006년에 의성여고로 부임해 김은정, 김영미, 김선영, 김경애를 발굴했다. 여자 컬링 선수들은 지금도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 한 명으로 김 교사를 꼽는다. 그는 한국인으로는 유일한 평창올림픽 컬링 국제심판이었다.

평창 동계올림픽 컬링 국제심판으로 활동한 김경석 신라중 교사. 김경석 교사 페이스북
평창 동계올림픽 컬링 국제심판으로 활동한 김경석 신라중 교사. 김경석 교사 페이스북

지금의 ‘팀 킴’은 2009년 처음 구성됐다. 김은정, 김영미가 대학에, 김경애와 김선영은 의성여고에 입학한 해였다. 포지션도 지금과 똑같았다. 김 교사는 “아이들을 주니어 대표로 만든 뒤 국가대표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밝혔다.

문제는 훈련 시간이었다. 팀워크가 생명인 컬링은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야 하는데 대구 소재 대학 기숙사에서 살던 김은정과 김영미는 평일에 의성으로 훈련하러 갈 수가 없었다. 두 선수는 대신 금요일마다 의성으로 와 금요일 오후, 토요일 오전과 오후, 일요일 오전까지 4차례 집중 훈련을 소화하고 다시 대구로 돌아가는 생활을 대학 내내 반복했다. 김 교사는 “신입생 때 얼마나 하고 싶은 일이 많았겠느냐. 둘은 컬링에 청춘을 바쳤다”고 했다. 시험기간 등 특별한 이유 아니면 언니들은 한 번도 훈련에 늦거나 불참하지 않았다. 누가 차비, 식비를 대준 것도 아니고 대학 졸업 후 갈 수 있는 실업 팀도 없었는데 그저 컬링이 좋아서였다. 경북체육회 실업 팀은 2012년 생겼다. 김 교사도 주말에 경주에 있는 집 한 번 못 가고 컬링 지도에 ‘올인’했다. 김은정은 “금요일 오후에 의성 가는 기차 안에서 영미와 김밥으로 끼니 때우던 일이 새록새록 하다”며 “물론 컬링을 하느라 포기한 게 많지만 그만큼 컬링이 즐거웠고 기량도 가파르게 늘었다”고 기억했다.

‘팀 킴 주니어’는 국제무대 데뷔전이었던 2010년 1월 일본 대회에서 예상 밖 선전을 펼쳤다. 당대 주니어 챔피언이었고 성인 무대에도 진출해 있던 중국 팀을 결승에서 만나 대등하게 싸웠다. 아쉽게 졌지만 처음 보는 한국 팀의 선전에 참가국들이 깜짝 놀랐다.

2010년 1월 일본 국제대회에 참가했을 때 모습. 왼쪽부터 오은진, 김선영, 김경애, 김영미, 김은정, 김경석 감독. 오은진은 지금 춘천시청 선수로 뛰고 있다. 김경석 교사 제공
2010년 1월 일본 국제대회에 참가했을 때 모습. 왼쪽부터 오은진, 김선영, 김경애, 김영미, 김은정, 김경석 감독. 오은진은 지금 춘천시청 선수로 뛰고 있다. 김경석 교사 제공
의성 소녀들의 풋풋한 시절. 2009년 10월에 2010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캐나다 밴쿠버로 전지훈련을 갔을 때다. 뒤에 리치몬드 올림픽 오벌의 모습이 보인다. 김경석 교사 제공
의성 소녀들의 풋풋한 시절. 2009년 10월에 2010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캐나다 밴쿠버로 전지훈련을 갔을 때다. 뒤에 리치몬드 올림픽 오벌의 모습이 보인다. 김경석 교사 제공

준우승 후 김 교사는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땅덩어리가 우리나라 반 밖에 안 되는 덴마크(당시는 덴마크가 최강)가 세계 컬링을 호령하고 있다. 의성 출신인 너희가 못 할 이유가 없다.”

그 때만 해도 선수들은 “에이, 우리가 어떻게요”라며 웃어넘겼다. 김 교사는 “아이들은 스스로를 믿지 않았지만 가능성을 본 나는 끊임없이 비전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2009년 10월 캐나다로 해외전훈을 갔을 때 김 교사는 선수들을 데리고 그 해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경기장을 일부러 찾았다.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인 리치몬드 오벌 앞에서 찍은 사진 속에 천진난만하고 앳된 소녀들이 웃음 짓고 있다. 김은정은 “그 때는 ‘여기가 올림픽 개최지구나’라는 생각만 했지 우리가 나중에 꼭 올림픽에 가자는 결의 같은 건 솔직히 없었다”고 털어놨다.

누가 알았으랴. 9년 뒤 이들이 평창올림픽에서 아시아 최초의 은메달을 거머쥐며 한국뿐 아니라 세계를 놀라게 할 거라는 걸.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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