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이 남긴 숙제-끝] 얼굴 찌푸린 ‘숟가락 얹기’
낄끼빠빠.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라’는 뜻의 인터넷 신조어다.
올림픽 같은 큰 규모의 대회가 벌어지면 정치인들이 대중에 얼굴을 알리기 위해 슬쩍 숟가락을 얹는 구태를 벌이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다. 평창올림픽에서도 ‘낄끼빠빠’ 하지 않는 몇몇 정치인들을 보며 눈살이 찌푸려진다는 사람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곤욕을 치른 정치인은 박영선(58)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다.
설날인 지난 달 16일 오전 TV중계를 보던 시청자들은 스켈레톤에서 금메달을 따고 환호하는 윤성빈(24) 바로 옆의 박 의원을 보며 불편함을 느꼈다. 박 의원이 AD(accreditationㆍ등록카드) 없이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윤성빈의 어머니와 여동생도 가지 못해 관중석에서 응원했다는 소식에 팬들이 격앙됐다. 박 의원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초청 게스트(Distinguished Guest Pass)로 간 것”이라 해명했고 조직위원회도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이보 페리아니 회장이 박 의원을 포함한 여러 일행을 통제구역으로 안내한 것”이라고 보도자료를 냈다. 그러나 페리아니 회장은 며칠 후 SBS와 인터뷰에서 “난 박영선 의원이 누군지도 모른다”고 반박해 박 의원이나 조직위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올림픽 전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의가 한창일 때 최문순(62) 강원지사는 “남자싱글, 여자싱글, 페어, 아이스댄싱 등 피겨 4종목 중 한국은 페어만 올림픽 출전권이 없고 북한은 페어만 참가 자격이 있어 절묘하다”며 피겨 단체전의 남북 단일팀 성사 가능성 불쑥 언급했다. 대한빙상경기연맹과 전혀 사전 논의도 없었고 사실 관계도 잘못됐다. 한국은 개최국 자격으로 페어 출전권을 딸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최 지사 발언 때문에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던 페어의 감강찬(23)-김규은(19)은 인터뷰 때마다 단일팀 논란에 대한 심경을 밝혀야 했다.
평창올림픽ㆍ패럴림픽 조직위원인 나경원(55) 자유한국당 의원은 올림픽을 한 달 앞두고 “남북한 여자 아이스하키팀 단일팀 구성은 올림픽 헌장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며 IOC와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에 반대 서한을 보내 구설에 올랐다. 단일팀 반대 여론이 훨씬 높을 때였지만 너무 지나친 처사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어떻게든 대중에 얼굴을 알리려거나 일단 ‘지르고 보자’는 정치인들의 행태에 대해 김귀옥 한성대 사회학과 교수는 “좋은 이미지를 만드는 데 무임승차 할 기회라 판단하는 것”이라며 “실질적으로 아무 도움도 안 되면서 적극적으로 재난 현장을 지휘하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모습에 대중들은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도 않는다. 이런 성향은 젊은 세대들에서 훨씬 높게 나타난다. 박영선 의원은 전통적인 여당 지지층인 2030 세대에게 훨씬 강도 높은 비판을 받았다. 김 교수는 “정치인들은 5060 세대에라도 자꾸 얼굴을 비추거나 이름을 알리면 좋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2030 세대에는 더욱 블랙코미디 같은 짓으로 비춰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태석ㆍ박진만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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