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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우리 명절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입력
2018.02.28 13:38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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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는 조선의 몰락과 함께 종교적 기능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 일반적으로 한 종교가 무너진 뒤 100년 정도 지나면 해당 종교의 영향력은 크게 제한되곤 한다. 구한말까지 90%에 육박했을 유교는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고작 0.2%에 불과하다. 오늘날 유교를 상징하는 갓은 민속촌과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낯선 풍경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럼에도 유교의 문화적 저력은 아직 거대한 위력으로 잔존하고 있다. 이것을 알 수 있는 측면이 유교적 조상숭배 명절인 설과 추석이다.

민족 대이동을 동반하는 최대의 명절 설과 추석은 단오, 한식과 더불어 4대 명절로 불리곤 한다. 단오는 5ㆍ5일로 1년의 중간을 기린다는 의미인데, 강릉 단오제는 지난 2005년에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록되기도 하였다. 또 한식은 중국 춘추시대의 진문공이 충신 개자추를 산에서 나오게 하기 위해 산불을 놓았다가 개자추 모자가 타 죽는 비극에서 유래한다. 이 사건을 통해 불의 위험성을 상기하며 숭배하는 명절이 바로 한식이다.

4대 명절 외에도 우리에게는 많은 명절이 있다. 이를 알기 쉽게 구분하면 ‘땡 명절’과 ‘보름 명절’로 양분된다. 땡 명절이란 1ㆍ1(설), 3ㆍ3(삼짇날), 5ㆍ5(단오), 7ㆍ7(칠석), 9ㆍ9(중양절)로 홀수가 겹치는 날이다. 전통적으로 홀수(기수)는 양기와 하늘 또는 신성하고 존귀함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짝수 땡은 안 되고 홀수 땡만 명절이 되는 것이다. 이 중 9ㆍ9일은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데, ‘주역’에서 양(ㅡ)을 나타내는 숫자가 바로 ‘9’이다. 그러므로 9·9는 양기가 중첩되었다는 의미의 중양절(重陽節)이 된다. 이때 민간과 사찰에서는 제삿날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을 기리는 천도의례를 거행한다. 또 눈썰미가 있는 분이라면, 홀수라도 11ㆍ11은 빠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10이 완성의 수이기 때문에 10이상은 제외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1년의 중간은 6ㆍ6일이 아니라 5ㆍ5일 단오가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보름 명절이란, 과거 농경사회 속에서 달을 숭배하고 풍요를 상징하는 명절이다. 이는 1ㆍ15(대보름), 6ㆍ15(유두), 7ㆍ15(백중ㆍ우란분절), 8ㆍ15(한가위)이다. 6월 보름에는 농사일을 마치고 양기가 충만한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목욕재계한다. 그리고 7월 보름부터 추수가 시작되어 8월 보름에 절정을 이루게 된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6∼8월 보름은 보름달의 풍성함을 상징하는 농사명절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법칙을 어기고 있는 것이 바로 정월대보름이다.

정월대보름은 계절상 농사와 관련될 수 없다. 그러나 대보름이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정월대보름은 보름 중에서 최고의 보름이다. 정월대보름이 강력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이 날이 한 해의 모든 재앙을 쓸어낼 수 있는 벽사(辟邪)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통표현에 ‘1년의 모든 액난은 연초에 도액(度厄)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설날부터 대보름 사이에 모든 나쁜 가능성을 소멸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대미를 장식하는 명절이 바로 정월대보름이다.

대보름의 세시풍속으로는 부럼 깨기, 쥐불놀이, 달집 태우기, 연등 밝히기, 폭죽 터뜨리기 등 다양하다. 밝은 불과 큰 소리로 모든 삿된 기운을 물리치고자 하는 노력들인 셈이다. 또 이날에는 날리던 연에 ‘송액(送厄)’ 즉 ‘액을 떨쳐 보낸다’고 적은 후 연줄을 끊는다. 즉 모든 액을 날려 버린다는 의미다. 시대는 달라졌어도 평안과 행복을 기원하는 인간의 바람에야 변화가 있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정월대보름은 우리에게 있어서 빛 바래지 않은 또 하나의 찬란한 명절이 아닌가 한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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