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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의 심야식탁] 소머리 썰며 동물의 생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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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의 심야식탁] 소머리 썰며 동물의 생을 생각한다

입력
2018.02.28 04:4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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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소머리 가르는 법을 배운 적이 있다. 젖은 면장갑에 스며들던 피의 질감이 떠오른다. 털을 잘라내던 기술자 선생님의 화려한 손놀림도 기억난다. 가위손의 칼춤 같았다. 한 바탕 춤을 추고 난 후 되돌아 씽긋 웃던 그 미소도. 내 손등을 쥐고 소머리의 구조를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설명하던 되직한 목소리도. 여기에 칼을 꽂아 넣어. 뼈가 느껴져? 그럼 이쪽으로 날을 눕히고 뼈를 따라서 가는 거야. 그렇지 그렇게 뼈에 바싹 붙여서. 오른쪽도 마찬가지로 아래에서 위로. 다 왔어. 칼에 힘 풀지 말고. 이제 당겨. 힘껏. 손등을 감아오던 소머리 기술자의 악력과, 뼈에서 살이 분리되는 순간 일렁이던 후끈한 바람 같은 것과, 그 공기를 따라 훅 끼쳐 올라온 비린 피의 울부짖음이,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다. 첫 칼을 꽂아 넣는 순간의 그 울렁거림까지도.

그걸 써먹을 생각으로 배운 건 아니었다. 1년에 한번 먹어볼까 말까한 소머리국밥을 위해, 굳이 손질되지 않은 소 머리를 사서 가르고 다듬어 고을 일은 없을 터. 소머리에 물을 먹여 근수를 늘리다 발각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물을 먹인단 말인가 궁금해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야말로 음식 만드는 데가 아니라 소설 쓰는 데 써먹기 위해서였다. 서울 마장동에서 정육기계점을 하시는 큰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소머리 가르는 집에 들어갔다. 속속 도착하는 소머리들. 걸개에 걸린 소머리들. 뼈와 살과 가죽이 분리된 소머리들. 머리들을 피해 자주 눈을 감고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피비린내를 피해 자주 숨을 참았다. 몇 개의 머리를 함께 가른 후, 물을 먹여 근수를 늘리는 방법을 알아냈고, 원하던 대로 그 얘기로 소설을 썼더랬다.

하몽 자르는 법을 처음 배우던 때도 기억한다. 다리 하나를 사서 껍질을 벗기고 부위별로 살을 바르는 법을 배웠다. 발굽과 발톱이 새카만 이베리코 돼지. 수년 동안 도토리를 먹고 살았다는 베요타, 소금에 절여 바람에 말린 뒷다리 하몽. 하몽 기술자는 내게 하몽 살을 바르는 법을 가르치기 전, 그 흑돼지가 살았던 평야와 도토리나무를 먼저 보여주었고, 하몽이 완성되는 과정까지 꽤 긴 시간을 들여 설명을 했다. 하몽을 거치대에 올리고 튼실한 허벅지살을 세세히 쓰다듬은 다음, 이윽고 발목 부위에 단도를 찔러 넣었을 때, 가죽에 갇혀 있다 한꺼번에 흘러나온 기름을 손바닥에 받으며 지었던, 그 기술자의 부듯한 표정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자부심. 이것이 바로 도토리고 바람이고 바다고 들판이라는 선언. 껍데기를 벗겨내고 복숭아빛의 지방을 매만지고, 한 장 한 장 얇게 살을 발라내는 동안, 결과 무늬와 감촉과 향에 대한 긴 설명을 하는 그는, 어쩐지 엄숙하고 어쩐지 경건했다.

그 후로 새 하몽을 거치대에 올릴 때마다, 그 순간을 생각한다. 칼을 들고 어떻게 기술적으로 잘 자를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그 다리가 살아 움직이던 도토리나무 벌판을 떠올린다. 매번 감사하고 고맙다. 감사한 마음으로 칼을 들면, 그걸 먹는 사람 또한 같은 마음이 될 것이라 믿으면서 하몽 한 점을 접시에 올린다. 소설을 읽고 한동안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고 고백한 사람들이 몇 있다. 그러면서 내게도 묻는다. 그곳에 다녀온 후에도 여전히 고기를 잘 먹느냐고. 그렇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고기를 즐긴다. 고기를 먹는 게 문제가 아니라 고기를 어떻게 다루는가가 문제가 아니겠는가. 고기를 내주는 동물을 키워내는 일부터 그것을 죽이고 가르고 요리해서 식탁에 오르기까지. 몇 푼 더 벌기 위해 죽은 소머리에 호스를 꽂아 무게를 늘리는 일과, 고기 한 점을 자를 때마다 고기 이전의 생을 생각하는 일. 내가 고기를 썰며 배운 것.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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