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여러 사람이 거의 같은 시간대에 전화를 걸어왔다. 발신지는 모두 중국으로, 친하게 지내는 친구와 선배, 선생님의 전화였다. 중요한 일을 귀띔해 주려고 폰을 집어든 거였다. 그들이 전한 말은 이것이었다.
“오늘 큰 콘서트에 관해 의논하는 전화가 갈 거야.”
저녁에 프로듀서에게 연락이 왔다. 바로 다음 날 베이징의 콘서트 기획사 관계자가 서울로 와서 미팅을 하고 싶다고 했다. 모든 일이 갑작스럽게 진행됐다.
기획사는 중국에서 대규모 콘서트를 기획하고 공연하는 회사였다. 과거 장국영의 공연을 기획했고, 최근에는 1회당 6만 6천명이 관람하는 콘서트 티켓 6회분을 9분 만에 매진시켜 화제가 되기도 했다. 10분이 안에 30만장 이상의 티켓이 팔려나간 것이다.
기획사 관계자란 분을 만나보니 기획사 대표였다. 중국 대형 콘서트 기획사 대표가 중국에서도 큰 명절로 생각하는 설에 한국까지 와서 미팅을 요청한 거였다. 콘서트를 떠나 미팅 자체가 중국 활동이 성과로 여겨질 지경이었다.
미팅을 하면서 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미팅의 씨앗이 2016년 딤프 오픈 공연이라는 것이었다.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무엇보다 정말 오랜만에 한국 무대에서 고국의 관객과 만나는 날이라 설레고 벅찼다. 게다가 브레드 리틀과 함께 듀엣으로 무대에 섰다. 일본 극단 사계에서 활동하던 시절 유튜브로 공연 영상을 접하고 그의 열성 팬이 되어버린 나였다. 그날 객석에는 한국 관객뿐만 아니라 중국인들도 다수 있었다. 내가 야래향을 부를 때 따라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공연 중에 중국 뮤지컬 관계자 한명이 핸드폰으로 그날의 공연을 생중계 했다. 중국 뮤지컬 곡뿐 아니라 세계적인 배우와 함께했던 그날의 공연이 중국인들의 마음을 흔들었다고 한다.
그 공연을 본 중국의 공연 관계자는 브로드웨이 출신의 남자 배우와 한국 여자 배우로 팀을 꾸려 중국에서 대형 콘서트를 하고 싶다는 뜻을 콘서트 기획자들에게 전했다. 그 씨앗이 자라 올해 설날 미팅까지 성사된 것이었다. 기획자는 브래드 리틀을 비롯한 외국인 남자 배우 2명과 한국인 여자 배우 2명, 모두 4명으로 공연팀을 구성할 것이라고 했다.
미팅에서 기획사 대표와 한국, 중국, 일본의 뮤지컬과 콘서트 문화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3월 중에 상하이에서 프로듀서와 함께 만나 2차 미팅을 하기로 약속을 했다. 그 자리에서 공연팀과 관련해 구체적인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의 뮤지컬 시장이 하나로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시아에서 열리는 뮤지컬 행사에서도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앤드의 대표 배우들과 제작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고, 그들 역시 아시아 배우와 공연 관계자들을 파트너로 여기고 스스럼없는 친구가 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이번 미팅을 통해 딤프의 국제적인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2년 전 ‘중국인 16만이 관람한 딤프’라는 글을 썼는데, 이제는 ‘딤프 출신’ 배우들이 온라인이 아니라 실제로 16만의 중국 관객을 만나게 될 차례다. 실제로는 그 이상이 되기를 기대한다. 딤프가 있어 다행이란 생각과 함께 국적과 공간을 초월하는 예술의 힘에 또다시 경외심을 느낀다.
홍본영 뮤지컬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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