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는 축구의 나라다. 베트남 못잖다. 둥근 것만 봐도 흥분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축구에 비해 야구는 생소한 스포츠였다. 4년 전 이만수 전 감독 등이 라오스에 처음 야구를 전했을 때, 야구공을 던져주면 축구공처럼 트래핑을 한 후에 손으로 집어서 공을 던졌다. 글러브를 끼고서도 맨손으로 공을 잡는 바람에 손바닥이 찢어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라오스 야구는 폭풍전야다. 짧은 역사에도 아시안게임을 목전에 둔 까닭이다. 아직 세계 랭킹도 없는 팀이지만 그만큼 도깨비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땀에 젖은 유니폼을 벗기 전까지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스포츠의 세계다. 라오스 야구도 예외가 아니다. 베트남의 박항서처럼 뛰어난 지도자만 애써준다면 라오스 야구도 결과를 속단할 수 없다. 박항서의 베트남 축구처럼 라오스 야구가 ‘기적’을 일으키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무엇보다 ‘헐크’ 이만수 전 감독이 활약하고 있다. 이 전 감독은 선수로 유명하지만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코치로 더 인정을 받았다. 이 전 감독이 마이너리그 코치로 활동할 당시 마이너를 전전하던 선수들이 그의 타격 코치를 받고 메이저리그도 벼락 진출한 예가 적지 않다. 그 덕에 실력을 인정받아 동료 코치들의 추천에 힘입어 미국 진출 당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메이저리그 코치로 활약할 수 있었다. 2005년에는 화이트삭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힘을 보탰다. 이 전 감독의 인지도는 아시아 어디서든 통한다. 그 존재감과 지도 노하우를 라오스에서 발휘하고 있다. 이 전 감독의 열정과 애정은 박항서 이상이다. 선수들을 자식처럼 돌보고 있다.
라오스국가대표팀 분위기도 좋다. 한 마디로 파이팅이 넘친다. 지금까지는 선수단 안팎에서 ‘야구로 뭘 할 수 있을지’ 궁금하게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다. 아시안게임에서 라오스 야구가 존재감을 드러내면 국가 이미지 재고는 물론이고 선수들이 한국,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 프로 리그에서 뛸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선수들이 열정을 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라오스 야구국가대표팀에서 메이저리그급 타격 폼으로 유명한 애(17)선수는 라오스 야구 역사 최초로 공식 대회 홈런을 기록했다. 올해 1월 한국과 태국에 거주하는 한인 교민팀과 라오스, 일본 팀 등 3개국 10여 팀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한-라 친선 국제야구대회’에서였다. 그라운드 정중앙을 가로지른 그의 홈런은 말 그대로 라오스 야구의 희망의 불씨였다. 애는 “홈런을 치고 나니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면서 “우리 라오스 야구는 역사도 짧고 선수도 정말 조금밖에 없지만 깜짝 홈런처럼 아시안게임에서도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만수 감독님이 우리에게 늘 전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더 발전할 수 있다’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말을 믿고 싶습니다. 그분의 말이 실현될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의 목표는 2020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 프로리그, 혹은 필리핀이나 대만 프로리그에서 선수로 뛰는 것이다.
라오스 국가 대표 에이스 투수인 투유(17)는 자신감이 애를 능가한다. 지난해 태국 국가대표팀과 가진 친선 경기에서 1.5군과 시합을 벌이면서 형성된 근거 있는 자신감이다. 패하긴 했어도 만루 찬스를 2번이나 잡았다. 그는 “투수 2~3명 정도는 매우 강했지만 나머지는 우리 타자들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실수만 없다면 태국도 이길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했다.
투유는 3회에서 1루 슬리이딩 태그를 시도하다가 발목이 돌아갔다. 1선발이 무너지면서 다른 투수도 무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실수가 잦았던 이유였다. 그는 “아시안 게임에서 최선을 다하면 태국을 이길 수 있을 것. 꼭 복수하고 싶다”면서 “최소 2승 이상을 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한국 야구에 대한 관심도 많다. 그는 SK의 김광현 선수를 존경한다고 밝혔다. “자세가 정말 멋있고, 공이 엄청 빠르다”면서 “기회가 되면 짧은 시간이라도 지도를 받아보고 싶다”고 했다. 그의 장래희망도 아시아프로리그에서 선수로 활동하는 것이다.
콜라(17)는 제2선발 투수와 3루 내야를 맡고 있다. 그의 자신감도 말 그대로 국가대표급이다. 동남아시아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숙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태국에 대해서도 “우리 투수들이 부상 없이 모두 제 실력을 발휘하면 이길 가능성이 있다. 한번 붙어보니까 해볼 만하더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이만수 감독님에게 서로 돕고 이해하고 격려하는 법을 배웠다”면서 “감독님이 보여주신 대로 겸손한 마음으로 힘을 모으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도 SK의 김광현이었다. 그는 “야구 외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서 “김광현처럼 멋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라오스 정부에서도 이 전 감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분위기다. 국무총리 표창을 비롯해, 지난 1월에는 제인내 라오J브라더스 대표와 대통령 훈장까지 받았다. 라오스 최초의 야구장 건설을 위해 좋은 부지도 내놓았다. 건설비용 마련이라는 숙제가 남아있지만 이 전 감독이 부지런히 뛰고 있다. 베트남의 박항서 열풍 이후로 긍정적인 반응이 많이 나오고 있다.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태국과의 경기 성사 여부다. 아시안게임에서 태국과 대결을 하게 된다면 라오스 전체가 숨죽이고 경기를 지켜볼 가능성이 높이다. 라오스 엘리트체육 관계자들은 4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태국을 이기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지만 내심 기적을 바라는 눈치다. 지난해 라오스 프로 축구팀인 란상인트라가 태국 프로팀은 부리남을 1:0으로 꺾자 라오스 전체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태국전은 라오스인들에게 한일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카셈(73)라오스국가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은 “라오스는 신생팀이라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결연한 목소리로 “태국을 이기면 정말 감동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이만수 전 감독의 열정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이만수의 활약과 도움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회의를 할 때마다 이만수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라오스에 야구를 전파하고 협회를 만드는 등 이만수는 우리에게 보물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 야구팈이 아시안게임은 물론이고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갈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는 한국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한국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더 협력해서 발전적 방향으로 나아가길 강력하게 원합니다. 더 깊은 관계가 되기를 바랍니다.”
야구장 건립과 관련해서도 “2017년 11월에 라오스교육체육부장관이 한국에 다녀왔다. 라오스 정부와 한국 정부, 야구인들이 노력하고 있는 만큼 조만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시짠(47) 라오스국가교육체육위원회 엘리트스포츠 과장도 제일 먼저 태국과의 경기를 언급했다. 그는 “태국을 이기기란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이긴다면 국민들이 정말 기뻐할 것”이라면서 “한국이나 일본, 대만 팀을 이기긴 힘들겠지만 아시아의 몇몇 작은 팀은 이길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전 감독에 대해서도 “야구 역사에서 정말 중요한 인물”이라면서 “라오제이(J)브라더스 같은 클럽이 더 많이 생겨나서 라오스 야구가 더 강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르꼬끄 데상트가 2년 동안 20만 달러 이상의 야구 장비를 지원하는 등 많은 도움을 줬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라오스 야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연못에서 바다로’. 동남아시아인들이 동남아시아를 벗어나 아시아, 나아가 세계에 두각을 드러낼 때 쓰는 표현이다. 동남아시아의 숙원과 열망이 함축되어 있다. 제인내(43) 라오J브라더스 대표는 “베트남의 박항서 감독을 비롯해 남수단의 임흥세 감독 등 한국 스포츠 지도자들의 열정과 헌신이 ‘너무 어려운 일’을 현실로 만들어내고 있다”면서 “‘작은 거인’의 베트남에 이어 ‘헐크’의 라오스도 주목해 달라. 꼭 라오스를 국민을 감동시키는 경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라오스 야구팀은 이미 한발을 외나무다리에 올렸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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