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과 별도… 러 영향력 키우기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의 휴전 결의안(2401호)에도 불구하고 동(東)구타 등 반군 거점 지역에 대한 시리아 정부군의 폭격을 멈추고 있지 않은 가운데, 러시아가 유엔 휴전결의안과 별도로 하루 단위 휴전안을 내놨다. 유엔 휴전결의안 채택 이후에도 시리아 정부군의 군사개입이 지속됐다는 점에서 알 아사드 정부를 배후 지원하고 있는 러시아의 제안이 생지옥을 방불케하는 시리아 내전 상황을 진정시킬지 주목되고 있다. 지난 10일간 민간인 희생자를 500명 이상 발생시킨 시리아 정부군의 공세가 수그러들 경우, 시리아 내전을 실질적으로 종식시킬 열쇠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쥐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줄 것으로 보인다.
26일(현지시간)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푸틴 대통령이 동구타 지역에서 민간인 희생을 줄이라는 지시를 내렸다”며 “27일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이 지역에서 인도주의적 휴전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푸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알 아사드 정부가 이 지역에 대한 무차별 폭격을 멈추도록 압력을 넣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러시아 휴전안은 지난 24일 통과된 유엔 안보리 휴전결의안과는 차이가 난다. 유엔결의안은 시리아 전역에서 30일간 휴전하는 내용이지만 러시아는 하루 5시간씩 동구타 지역에서만 휴전하자는 입장이다. 유엔 결의가 러시아라는 나라에 막혀 휴지 조각이 된 셈이다.
러시아는 이미 유엔 결의안 채택 과정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한 바 있다. 러시아 주장으로 휴전 대상에서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와 알카에다에 뿌리를 둔 ‘하이아트 타흐리르 알샴(HTS)’ 등이 제외됐다. 유엔결의안 채택 이후인 25일에도 시리아 정부군의 공습으로 동구타에서 민간인 22명 이상이 사망했는데, 이 역시 러시아의 묵인 때문이라는 평가다.
시리아 내전 기간 동안 사태를 수수방관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유엔은 이날 러시아의 독자 휴전안에 대해 끌려가는 모습을 보였다. “0시간보다는 5시간 휴전이 낫기는 하지만 우리는 유엔 결의안에 따라 30일간 휴전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밝히는데 그쳤다. 헤더 노어트 미 국무부 대변인도 “러시아와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정부군이 유엔 결의에도 불구하고 동구타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면서 “러시아는 유엔결의에 따라 시리아정부군의 이런 작전을 멈추도록 영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러시아, 미국, 이란, 터키, 이스라엘 등의 개입으로 시리아 내전 해법이 꼬여가면서 이 지역에서 러시아의 통제력은 더욱 부각될 것을 보인다. 지난 10일 시리아 방공미사일에 이스라엘 F-16 한 대가 격추되는 위기가 발생했지만, 푸틴 대통령이 나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이 문제를 논의하면서 사태를 수습한 바 있다.
워싱턴포스트도 “시리아에서 강대국이 유혈사태를 중단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영향력을 드러내는 의도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요국의 이해가 얽혀있지만, 시리아 문제에서의 주도권은 러시아에 있다는 평가이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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