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비핵화 필요성 강조하며
추후 행동조치 등 포괄적 논의
남북 군사적 긴장 사전방지 위해
4월 한미훈련도 언급 가능성
북한 ‘남한 중재외교 믿어볼 것’ 의중
내주 고위급 미국 파견 중재 본격화
지난 10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참석 차 남측을 찾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에 전달한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메시지는 “북미대화에 북쪽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것이었다. 북측이 남북정상회담을 타진한 데 대해 ‘북미대화를 통한 비핵화 진전이 먼저’라는 답변을 낸 셈이다. 그런 점에서 김 제1부부장에 이은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방남은 문 대통령의 북미대화 요구에 대한 긍정적 답변을 보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5일 문 대통령이 평창 모처에서 1시간가량 김 부위원장을 접견한 자리에서도 이 같은 북한의 기류는 확인됐다는 게 우리 정부의 평가다. 접견에서 “북측 대표단은 미국과 회담할 충분한 의도를 갖고 있으며 남북관계 개선과 함께 북미관계 개선도 이뤄져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했다”고 청와대와 정부당국 관계자들은 26일 전했다.
또 문 대통령은 북측 대표단에게 비핵화 필요성을 직접 언급했으며, 북측이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을 포괄적으로 논의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서로의 입장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진솔한 대화가 오갔다”며 “(북미대화의) 여건을 만들어가는 데 긍정적 시그널을 보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서 문 대통령은 북미대화를 열기 위한 북한의 선제적 행동 필요성을 설명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화보다 압박을 앞세운 미국의 태도를 돌리기 위한 구체적 조치가 있어야 미국도 이를 신뢰하고 대화에 나설 것이란 게 문재인정부 외교안보 분야 핵심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결국 ‘선(先)핵동결 후(後)핵폐기’의 2단계 북핵해법이 어떤 식으로든 거론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 해법은 북한이 핵ㆍ미사일 도발 중단을 천명한 다음 북미 또는 6자회담 당사국 간 비핵화 협상을 시작한다는 것으로 현재로선 가장 현실적인 방법론으로 여겨진다.
이 과정에 4월 초 재개될 것으로 보이는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언급도 당연히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북미대화 가능성을 높여가자면 훈련 재개 뒤 양국 간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는 것을 사전에 방지해둘 필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같은 제안에 대한 북측 대표단의 반응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북한이 그간 비핵화를 전제로 한 협상 가능성 자체를 강력히 부인해온 만큼 남측의 2단계 북핵해법 등을 곧바로 용인했을 가능성은 낮다. 다만 일단 한국의 중재 외교를 믿어보겠다는 정도로 북측이 의사 표시를 했을 가능성은 있다.
정부 관계자는 “방남 기간 한국을 통해 북미대화 의지를 보였다는 것 자체가 문재인정부의 북미 간 중재외교를 활용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통해 북미대화 의지를 내비치고, 이에 대한 미국의 의중을 다시 한국을 통해 듣겠다는 게 북한의 복안이다. 이런 식으로 북미 간 ‘탐색적 대화’가 당분간 이어질 길이 열렸다는 게 우리 정부의 평가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북한 대표단에 대미라인으로 알려진 최강일 외무성 부국장이 포함된 것 역시 북미대화에 대한 의지를 나름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이르면 내주 외교부 고위급 관료를 미국에 파견, 남북 간 논의된 내용들을 설명할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 수석대표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거론되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직접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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