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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김영철 패러독스

입력
2018.02.26 16:1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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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초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부산시당 신년인사회. 개혁보수 세력의 맹주가 될 것처럼 뛰쳐나갔다가 두 달 전 동지 유승민을 '죽음의 계곡'에 남겨 둔 채 패잔병처럼 회군한 김무성 전 대표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제가 지은 죄가 많은 만큼 더 열심히 하겠다." '지은 죄'가 뭔지는 말하지 않았다. 한 당원이 '배신자'라고 고함치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태의 책임을 따지자 홍준표 대표가 급히 엄호에 나섰다. "지금은 (탈당 등) 과거를 묻지 말고 우리 모두 하나가 돼 문재인 좌파정부를 척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 '천안함 폭침 주범 김영철 방한 저지 투쟁위원회 위원장.' 김 전 대표가 마침내 열심히 할 일을 찾은 모양이다. 그는 이 긴 직함으로 겨울바람 매서운 임진강변 통일대교 남단에서 당 지도부와 함께 밤샘 연좌농성을 주도하며 모처럼 존재감을 드러냈다. "서해를 지키던 천안함을 폭침시켜 46명의 해군장병을 살해한 김영철이 대한민국 땅을 단 한 발짝도 밟지 못하게 하겠다"고 그가 결연하게 '묻지마 저지'에 앞장서자 홍 대표 리더십에 이의를 제기해 온 중진과 외곽으로 밀려난 친박계 의원들이 물 만난 고기마냥 속속 몰려들고 있다.

▦ 홍 대표와 김성태 원내대표는 '체제 전쟁' 운운할 정도로 신이 났다. '철천지 원수' '즉시 사살' '살인마' 등 극언을 쏟아 내고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통한 연방제 통일 시나리오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을 떠보려는 시도"라는 색깔론을 서슴지 않는다. 김영철이 2014년 남북군사회담 대표로 나왔고 연평도 포격 주범인 황병서가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온 일도 있지만, 이런 사례를 빌미로 김영철 방남 후폭풍을 덮으려는 청와대와 민주당의 시도는 되레 역풍을 맞고 있다. '김영철 북풍'은 지방선거 판도를 바꿀지도 모른다.

▦ 이쯤 되면 한국당은 오늘 귀환하는 김영철에게 고마움과 아쉬움을 담은 작별인사를 보내야 할 것 같다. 그의 방남이 위축된 보수진영을 단결시키고 안팎 갈등과 무기력으로 모래알 같던 한국당을 뭉치게 하는 기회를 제공했으니 말이다. 이른바 '김영철 패러독스'다. 하지만 김영철 방남은 문 대통령에게 그렇듯이 한국당에도 양날의 칼이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고단한 여정에서 이번 이벤트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점치기 어렵다. 새 봄 한국당의 꿈이 현실이 될지 망상이 될지 궁금하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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