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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전용 승강기라서… 방화문 그냥 열어둬요” 은행도 안전불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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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전용 승강기라서… 방화문 그냥 열어둬요” 은행도 안전불감증

입력
2018.02.26 04:4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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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 이용시설 곳곳에 위험

의류상가 소화전 앞엔 옷감 쌓여

“스프링클러 말 자체가 생경하다”

서울시내 한 대형은행 본점 1층 방화문이 22일 활짝 열린 채 고정돼 있다.
서울시내 한 대형은행 본점 1층 방화문이 22일 활짝 열린 채 고정돼 있다.

22일 오후 서울 A은행 본사 26층짜리 건물 1층. 비상용 엘리베이터 출입문에 설치된 방화문이 밑 틈에 끼워진 나무에 고정돼 활짝 열려 있었다. 만약의 사태에 제 역할을 하려면 문은 일단 닫혀 있어야 하는 게 정상. 건물 관리직원에게 이유를 묻자 “비상용 엘리베이터를 VIP(임원) 전용으로 사용하고 있어 (의전상) 열어놓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고위층 임원이 들락거릴 때마다 성가시게 여닫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는 표정이었다.

다음날 서울 인기 재래시장으로 꼽히는 종로구 광장시장. 이곳은 불법으로 쌓아둔 물건들이 소화전 앞 곳곳을 점령하고 있었다. 인화물이 많아 화재에 취약한 의류상가 쪽 사정은 더 심각했다. 계단마다 옷감이 무질서하게 쌓여 소화전 자체가 어디 있는지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시장 상인은 “(옷감) 보관 장소가 부족해 어쩔 수 없다”고 멋쩍게 웃으면서도 “(불이 나면) 구조가 복잡한 데다 대피로가 좁아 아마 큰 난리가 날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스프링쿨러 같은 기본 시설도 없었다. 20년 넘게 시장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했다는 50대 이모씨는 “스프링클러란 말 자체가 생경하다”고 했다.

42명이 숨진 밀양 세종병원 참사 후 한 달이 지났지만 일상의 화재 안전불감증은 여전해 보인다. 고층빌딩이나 사우나 같은 다중이용시설에서는 이동이 불편하다는 등 이유로 방화문을 활짝 열어 놓고, 소화전이나 소화기를 각종 적치 물건들로 막거나 구석에 방치하고 있는 식이다. 시민 생명과 삶터를 단번에 집어삼킬 수 있는 또 다른 화재 참사에 대한 우려가 가시지 않는 이유다.

밀양 참사 한달 정도 앞서 발생한 충북 제천시 노블휘트니스스파 화재(29명 사망). 이후 스파 찜질방 등 다중이용시설 안전관리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랐지만, 이곳들은 여전히 ‘대표 위험지대’로 꼽힌다. 소방청이 지난해 12월 26일부터 지난달 15일까지 전국 찜질방 6,474곳을 특별 조사한 결과, 3곳 중 1곳 이상(2,045곳)에서 소방안전시설 불량이 확인됐다. 전체 단속 건수(5,704건) 가운데 비상구가 아예 잠겨 있거나, 비상구 앞에 장애물이 방치돼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2,364건(41.4%)에 달했다. 소화기나 (화재)감지기 등 필수 소화설비가 아예 갖춰지지 않았거나, 작동이 잘 안돼 유명무실한 사례도 1,337건(23.4%)이나 됐다.

초기 진화를 가로막는 건물 진입 소방도로 불법 주·정차 문제 역시 아직 개선되지 않고 있다. 24일 인천 서구 자동차 매매단지 인근 편도 1차로는 양쪽 갓길 불법주차 탓에 차량들이 거북이운행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30대 이모씨는 “단속 차량이 요란한 경고음을 울려가며 지나가지만, (단속) 시늉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국회에서 소방기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불법 주·정차 차량이 소방차 긴급 통행을 막을 경우 차량을 훼손해도 따로 보상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소방관들은 “차량을 파손시키며 이동하더라도 시간이 걸리긴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안전의식이란 게 큰 사건이 발생했다고 바로 생기는 건 아니다“라며 “방화문을 열어놓으면 안 되는 이유 등 왜 그런 것들이 필요한지를 다양한 통로와 방식을 통해 알려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사진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인천 서구의 한 중고차 매매단지 앞 도로 갓길이 24일 불법주차 차량으로 점령됐다.
인천 서구의 한 중고차 매매단지 앞 도로 갓길이 24일 불법주차 차량으로 점령됐다.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내 계단에 있는 소화전이 23일 옷감으로 가려져있다.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내 계단에 있는 소화전이 23일 옷감으로 가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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