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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존 하비 켈로그(2월26일)

입력
2018.02.26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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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 플레이크의 창시자 존 하비 켈로그가 1852년 오늘 태어났다.
콘 플레이크의 창시자 존 하비 켈로그가 1852년 오늘 태어났다.

제7안식일예수재림교회 신자였던 외과의사 존 하비 켈로그(John Harvey Kellogg, 1852.2.26~1943.12.14)가 시리얼 콘플레이크를 개발한 동기가 자위(自慰)를 근절하기 위해서였다는 건 꽤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성행위 일반이 영혼과 육체의 병을 낳는 원인 중 하나라 판단했고, 자위는 특히 죄가 중하다고 여겼다. 그의 판단은 유서 깊은 유대-기독교의 전통과 빅토리아 시대의 엄숙주의에 근거한 거였다. 저자 미상의 책 ‘오나니아: 자기오염의 사악한 범죄와 공포의 결말’이나 자위행위의 질병 원인설을 주장하는 일부 학자들의 논문이 있긴 했지만, 대체로 자위는 영혼의 타락과 관련된 정신적 결함과 비행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의사 켈로그는 ‘Plain Facts…’로 시작하는 장황한 제목의 책에서 자위행위가 야기하는 39가지 증상, 즉 허약, 결핍, 조울, 변덕, 심지어 부정맥과 간질 등을 특정했다.

미시건의대와 뉴욕 벨뷰병원의대를 거쳐 의사가 된 23세의 그는 1876년 재림교회 부설 뉴욕 베틀크리크요양원 원장으로 부임, 자위 연구를 본격화했다. 성욕이 왕성하고 자위를 즐기는 이들이 육식과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한다는 점에 착안, 성욕 억제 및 치유용 건강식으로 견과류와 옥수수 오트밀 등을 갈아 만든 게 콘플레이크였다. 먹기 간편하고 영양ㆍ식이섬유가 고루 든 콘플레이크는, 의도한 효능과 무관하게 꽤 인기를 끌었다. 그는 동생 윌과 1906년 ‘켈로그(kellogg’s) 브랜드를 설립해 일반에 시판, 대공황시대 빈민 구휼에도 기여했다.

켈로그의 ‘창의’는 다양한 형태로 발현됐다. 물과 요거트를 장에 강제 투입해 씻어내는 장 청소기서부터, 남자 아이들의 성기 포피에 은철사 삽입을 시술하고, 여아의 음핵은 석탄산으로 화상을 입힘으로써 자위를 원천 봉쇄하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그는 1879년 결혼했지만, 알려진 바 평생 섹스리스의 삶을 유지했다. 부부는 법적 입양아 7명을 포함해 총 42명의 아이를 양육했다. 콘플레이크에 설탕을 가미하는 문제를 둘러싼 이견으로 말년의 그는 동생의 사업에서 손을 떼고 종교ㆍ저술사업에 몰두했다. 그는 우생학을 신봉한 인종 차별주의자이기도 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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