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1조원ㆍ현대제철 5,000억원 등
투자자 호응에 기업들 발행액 늘리기도
국내 기업들이 연초 두 달 동안 최대 9조원대에 이르는 대규모 회사채 발행에 나섰다. 본격적인 금리 인상을 앞두고 저리의 자금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기업과, 마땅한 중장기 투자처를 찾는 기관투자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25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23일까지 발행된 회사채 규모는 7조7,917억원이다. 발행 조건을 확정하고 이달 28일까지 청약 예정인 회사채 규모도 1조2,400억원에 달해 1, 2월 회사채 발행액은 9조원을 넘길 전망이다. 지난해 연간 회사채 발행액(32조2,668억원)의 3분의 1에 가까운 물량이 올해 첫 2개월 동안 쏟아진 것이다.
특히 신용등급이 우량한 대기업들의 대규모 회사채 발행이 잇따랐다. 이 기간 동안 회사채 발행을 통해 5,000억원 이상의 대규모 자금을 조달한 기업만 해도 현대제철(6,000억원), KT(5,000억원), SK텔레콤(5,000억원), LG화학(1조원) 등 4곳이다.
우량 기업들까지 자금 조달에 나서면서 회사채 시장은 전례 없는 호황을 맞고 있다.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수요예측 과정에서 ‘흥행’을 감지한 기업들이 발행 금액을 대거 늘리는 일도 반복되고 있다. 회사가 상정한 수준보다 낮은 금리를 제시한 참가자에게 물량을 많이 배정하는 방식으로 전체 발행금리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KCC는 21일 진행한 회사채 수요예측에 발행 예정금액(3,000억원)의 두 배 이상인 7,300억원이 몰리자 5,000억원(3년 만기물 3,000억원, 5년 만기물 2,000억원)으로 발행규모를 늘렸다. LG디스플레이는 20일 진행한 수요예측에서 8,300억원의 자금이 몰리자 회사채 발행 규모를 2,000억원에서 3,900억원으로 늘렸다. 같은 날 SK 회사채 수요예측에서도 발행 예정액 3,900억원의 두 배가량인 7,500억원의 자금이 몰려들었다. 이경록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설 연휴 이후 LG화학, LG디스플레이 등 LG그룹 우량 계열사와 SK그룹 계열 4개사의 수요예측이 대거 이어졌는데 모두 미매각 물량 없이 오버부킹(초과 판매) 됐다”며 “하위등급(A-)인 SK실트론의 경우에도 수요예측에서 2년물과 3년물이 각각 3.8배, 4.3배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서두르는 것은 3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 인상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국내외 시중금리(채권금리)가 높아지는 만큼, 기업 입장에선 금리 인상 전에 대규모 자금 조달을 해놓을 유인이 생긴다. 실제 채권금리는 지난해 연말부터 상승세를 타고 있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지난해 12월 28일 2.134%에서 이달 20일 2.285%로 상승했고, 3년 만기의 ‘AA-‘등급 무보증 회사채 금리도 같은 기간 2.678%에서 2.831%로 높아졌다. 연준과 한국은행의 금리인상 정책에 따라 채권금리 상승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 있다.
쏟아지는 회사채 물량을 받아내는 쪽은 연기금, 자산운용사, 보험사 등 대형 기관투자자들이다. 중장기적 자금 운용을 위해 채권투자를 선호하는 이들 기관 입장에서는 국고채보다 수익이 높으면서 투자위험은 상대적으로 적은 우량기업 채권을 대량 매입할 수 있는 현행 회사채 시장이 맞춤한 투자처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10~20년 장기 채권도 수요가 몰리면서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며 “새 국제회계기준(IFRS 17) 도입에 따라 자산의 평균 회수기간(듀레이션)을 늘려야 하는 보험사들의 장기물 수요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통상 1, 2월에 투자를 늘리는 기관투자자의 관행도 회사채 수요를 늘리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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