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않아 고령자 될 중장년층 등
재미있는 사연 통해 미래 불안 해소
일본에서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만화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노년에 사랑을 한다거나 PC방에서 컴퓨터를 두드리며 젊은 세대와 다를 바 없이 일상을 만끽하는 만화 속 모습이 다양한 세대로부터 지지와 공감을 얻고 있다. 머지않아 고령자 세대가 될 현재의 만화팬들이 미래의 불안을 날려보내며 열렬히 반응, 새로운 장르로 등장하는 모습이다.
‘팔순 마리코’(코단샤 출판사)가 대표적이다. ‘80세의 마리코 오바짱(할머니) 오늘 가출한다!’는 자극적 광고 문구가 눈길을 끄는 이 만화는 누계 발행부수가 25만부를 돌파했다. 주인공인 베테랑 작가 마리코는 남편을 여읜 뒤 아들ㆍ손자 부부, 증손자 4세대가 함께 사는 집에서 있을 곳이 마땅치 않다고 느꼈다. 결국 가출을 결심, 배낭을 멘 채 PC방으로 향한다. 할머니도 PC방 회원이 될 수 있다며 당당한 표정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원고를 쓴 뒤 집보다 몇 배나 집중이 잘됐다고 만족해한다. 마리코는 젊은 시절 가슴을 설레게 한 남성과 재회해 동거까지 시작한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이 만화 출판사로 환영, 격려의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돈과 건강 문제로 여전히 불안하지만 30년 후 마리코 할머니처럼 되고 싶은 여성 중장년 독자층에서 “용기를 얻었다”, “고령의 엄마가 이 만화를 읽어줬다”는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집주인과 나’(신초샤)라는 만화에도 80대 할머니가 등장한다. 도쿄 신주쿠(新宿)의 집주인과 월세로 들어간 40세 개그맨의 교류를 엮은 에세이 만화다. 저자는 개그콤비 ‘카라테카’ 멤버인 야베 타로(矢部太郎)다. 8년 전부터 이 집 2층에 살면서 겪은 집 주인 할머니와의 재미난 사연을 만화로 소개했다. 나이를 물어보면 “종전(終戰)에는 17세였지”, 좋아하는 남성을 물으면 “맥아더 원수(元帥)가 내 스타일이야”라는 둥 엉뚱한 대답이 나오는 상황을 재치 넘치게 묘사했다. 집안을 구석구석 잘 청소하면 우아한 말투로 차를 대접하거나, “(나의) 다음 번 외출은 산즈노카와(三途川ㆍ저승갈 때 건넌다는 강)야”라는 할머니의 농담이 담긴 이 만화는 20만부를 넘겼다.
60세 할머니가 17세 청춘으로 신체가 바뀌는 ‘스미카스미레’, 88세 노인이 환생한 유치원생 이야기인 ‘할머니소녀 히나타짱’은 현대적 일상과 촌스러운 복고풍이 부딪치는 코믹이 핵심이다. 이런 부류의 만화를 보고 30대 남성들은 할머니와 보낸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일본 만화업계에선 피곤한 현대인은 그리움으로 치유 받기 마련이란 점에서 향후 만화의 키워드로 ‘노스탤지어’(향수)가 부각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국가가 나서 65세를 노인기준으로 삼는 건 비현실적이라고 선언한 일본에서 ‘할머니 만화’가 새로운 장르로 기세를 떨칠 전망이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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