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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고 가르치기 좋아할수록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입력
2018.02.24 04:4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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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최고급 아파트에 살며

평화를 노래한 존 레논

배신감 느낀 팬에게 목숨 잃어

헤롯왕을 놀라게 했던

예수와 제자들의 청빈함

목회자는 말과 삶이 일치해야

지난 9일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존 레넌의 이매진이 울려펴지는 가운데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일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존 레넌의 이매진이 울려펴지는 가운데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그의 노래가 수천의 촛불과 함께 전 세계로 울려 퍼졌다. 이념과 인종의 벽을 넘는 화합의 장에서, 그의 노래는 참 적격이었다. 사람을 나누는 국가도 없고 누구를 죽이거나 무언가를 위해 죽어야만 하는 일도 없는 그런 세상을 ‘상상해보자(imagine)’는 가사가 인상적인 노래다. 올림픽 정신과도 어울리고 북한도 참여한 우리네 큰 행사에 걸맞은 노래였다.

1980년 12월 8일, 뉴욕 맨해튼의 밤도 지금의 평창만큼 추웠을 것 같다. 레넌은 어느 광팬이 등 뒤에서 쏜 다섯 발의 총상을 입고, 자기가 사는 고급 아파트 앞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 죽고 말았다. 총을 쏜 마크 채프먼은 ‘이매진’의 가사에 분노하여 그를 죽였다 한다.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을 상상해 보아요. 그럴 수 있겠지요? 탐욕도 배고픔도 없는 그런 형제애를. 상상해보아요. 모든 사람이 이 세상을 같이 공유하는 것을.” 노래는 무소유와 형제애를 권유하고 있다.

하지만 레넌은 자기 가족과 함께 뉴욕의 고급 아파트에서 최상의 부를 누리며 살고 있었다. 존경하기 때문에 배반감이 더 컸나 보다. 견딜 수 없어 채프먼은 자신이 좋아했던 인물을 쏴 죽였다. 참 황당한 사건이었다. 전설적인 영국의 록밴드 비틀스의 멤버였던 레넌. 그는 남부러울 것 없는 인기 아티스트이며 갑부였지만, 자기가 부른 노래 가사와 실제 삶이 달랐다는 이유로 총에 맞아 죽었다.

성직자나 정치인, 선생과 같은 직업을 가진 이들은 좀 오싹하지 않으신지. 늘 남에게 존경 받을 말만 골라서 하는 사람들인데, 실상 자신이 그렇게 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에 교회와 목회자들은 유별나게 질타의 대상이 된다. 한국 근대사에 빼놓을 수 없을 훌륭한 신앙인들도 많았지만, 요즘 분위기는 종교와 성직자들에게 썩 호의적이지 않다. 사실 별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17세기 피터 데 그레버 작, '헤롯 앞에서 설교를 하고 있는 침례 요한'. 요한은 헤롯을 비난했다가 죽임을 당한다.
17세기 피터 데 그레버 작, '헤롯 앞에서 설교를 하고 있는 침례 요한'. 요한은 헤롯을 비난했다가 죽임을 당한다.

그런데 헤롯은 예수쟁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이야기를 듣고 오히려 예수를 알고 싶어 했다. 로마제국의 용인아래 유대지역을 다스리던 헤롯은, 사실 어느 유별난 신앙인을 목 베어 죽이기까지 했던 폭군이었다. 그는 천국이 가까웠다고 소리치며 다니던 침례 요한을 죽였다. 이복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부도덕한 결혼을 했던 자기를 서슴지 않고 비난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헤롯은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어 죽였는데, 내게 이런 소문이 파다하게 들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예수를 만나고 싶어 하였다.”(9:9)

그 예수쟁이 성직자들의 삶은 주목할 만 했다. 그들의 삶과 행실 때문이었다. 복음을 전하러 나서는 그들에게 예수는 이렇게 가르쳤다. “길을 떠나는 데는,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말아라. 지팡이도 자루도 빵도 은화도 가지고 가지 말고, 속옷도 두 벌씩은 가지고 가지 말아라.”(9:3) 그들은 무소유에 가깝게 살았기에, 물질에 욕심 낼 일이 없었다. 지금보다는 옷이 훨씬 귀하던 때라 두 벌의 옷도 그들에겐 사치였다. 거의 거지에 가깝게 보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들을 사람들은 주목했고, 심지어 헤롯마저 예수를 만나고 싶어 했다.

지금의 성직자들에게 이 가르침을 극단적으로 적용하자는 말은 아니다. 옷을 두 벌 가지지 말라고 했지, 한 벌 옷도 입지 않으면 되레 곤란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더 가지자”고 말할 때, 목사들은 “더 주자”고 말해야 하는 이들이다. 자신들의 말과 삶이 일치하려면 성직자들의 생활은 겸허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목사도 부자일 수는 있겠지만, 분명히 사치하지는 않게 살아야 할 것이다.

헤롯을 놀라게 했던 예수의 제자들은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병든 사람을 고쳐”주었다.(9:2)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그들이 얼마나 고맙고 존경스러웠을까? 그 마을에 머물러 사역을 지속한다면 아마도 안정적인 생활과 명성도 얻을 수 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성직자들은 예수로부터 독특한 명령을 부여받았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에 머물다가, 거기에서 떠나거라.”(9:4) 안주하기를 거부하고 그들은 늘 스스로 떠나야만 했다. 떠나지 못하면 어느 누구든지 삶의 안락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법인가 보다. 성직자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들은 나가서, 여러 마을을 두루 다니면서, 곳곳에서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쳤다. 분봉왕 헤롯은 이 모든 일을 듣고서 당황하였다.”(9:6-7)

성경이 보여주는 참 예수의 제자들은 이와 같이 살았다. 지금의 성직자들이 이를 모를 리 없고 자주 입으로 전달했던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대한다. 그들의 말과 삶이 일치하기를.

레넌은 아티스트였기에 얼마든지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노래에 실어 부를 수 있는 자였다. 목숨을 내놓아야 할 만큼 책임질 직업도 아니다. 그런데 그는 반전 운동이나 무소유 퍼포먼스 등을 벌이면서, 어느덧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고 존경 받는 사회 운동가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그의 말과 삶이 일치하기를 바랐나 보다. 성직자도 정치인도 선생도 아니었지만, 말과 삶이 달랐던 결과를 그는 비참하게 맞이해야 했다.

더 큰 충격은 그를 죽인 채프먼이 꽤 열성적인 교인이었다는 것이다. 교회와 기독교 단체에서 봉사도 하고 가르치기도 했었다. 원수도 사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모를 리 없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자기 손으로 사람을 죽였다. 그도 결국에는 말과 삶이 다른 사람이었다. 물론 심각한 정신병을 앓고 있었기에 그가 얼마나 진정한 신앙인이었는지는 의구심이 든다. 여러 차례 자살시도도 했고, 레넌을 죽이기 여섯 시간 전에는 태연히 그에게 다가가 사인을 받았다 한다.

채프먼이 레넌에게 크게 분노하게 된 원인이 하나 더 있었다. 1966년 어느 인터뷰에서 “비틀스는 예수보다 더 인기가 많다”고 레넌이 발언한 것이다. 거센 항의에 레넌은 결국 사과했다. 그런데 문제의 인터뷰 전문을 보면 흥미로운 것이 눈에 띈다. 예수는 옳았지만 그의 제자들 즉 교회가 기독교를 망쳤다고 레넌이 말한 것이다. 그도 교회와 목사에 대한 기대가 컸었나보다. 그래서 예수의 고귀한 가르침을 말만 했지 그대로 살지 못했던 교회를 비난한 것이다. 여기에서도 다시 한 번 말과 삶이 다르다는 것이 이슈였다. 아이러니는 레넌 자신이 그 화살을 맞아 죽음을 맞은 것이다.

사실 그의 죽음보다 더 어이없는 것은, 어떻게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자의 손에 쉽게 총이 들려질 수 있냐는 것이다. 더욱이 그 나라는 대통령이 늘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하는 나라다. 하지만 지금도 비극적 살생을 낳는 총기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애초에 성경에 손이나 얹지 말 것을, 또다시 말과 삶이 다른 것이 아쉽게도 눈에 뛴다. 그 책임은 역사 속에서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말 많고 가르치기 좋아하기로는 목사와 톱(Top)을 다툴 정치인들이, 평화와 화합의 장인 올림픽에 국내외로부터 잔뜩 몰려왔다. 평화를 노래하는 레넌의 ‘이매진’을 들으며 딴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있었다면, 이 노래의 ‘업보(Karma)’를 주의하시기 바란다.

남을 가르치기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 하나님은 특별히 성경에 이런 말씀도 남겨두셨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선생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가르치는 사람인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야고보서 3:1)

기민석 침례신학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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