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팀 일본 꺾고 결승 진출
스킵 김은정 7대6 앞선 10엔드서
마지막 샷 빗나가며 동점 허용
연장선 실수 없이 회심의 킬 샷
“대한민국~” 경기장 함성 쩌렁
남녀 아시아 처음 올림픽 결승행
25일 스웨덴과 금메달 다퉈
“니 내랑 컬링 함 안 할래?”
“뭐라 캐쌌노. 그기 뭐꼬?”
“컬링장이 생깄는데. 우리 함 가보자.”
2007년 어느 날, 경북 의성군 의성여고 1학년에 다니던 김영미(27)는 친구 김은정(28)에게 방과 후 활동으로 컬링을 하자고 제안했다. 경북 컬링의 대부 김경두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회장의 노력으로 의성에 한국 최초의 컬링장(현 컬링훈련원)이 생긴 직후였다. 이 두 소녀가 11년 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국민 영미’와 ‘안경 선배’로 불리며 한국 컬링의 역사를 새로 쓸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얼마 뒤 김영미의 동생 김경애(24)가 언니 물건을 주러 왔다가 얼결에 합류하고, 김경애의 친구 김선영(25)이 합류했다. 2015년에는 경기도의 고교 유망주 김초희(22)가 가세해 지금의 ‘팀 킴(Team Kim)’이 됐다. 컬링은 스킵의 성을 따서 팀 이름을 붙이는데 한국은 김은정이 스킵, 김영미가 리드, 김선영이 세컨드, 김경애가 서드, 김초희가 후보다.
‘팀 킴’이 한국 컬링 역사를 새로 썼다.
한국은 23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준결승에서 후지사와 사쓰키(27) 스킵이이끄는 일본을 치열한 연장 승부 끝에 8-7로 누르고 결승에 진출했다. 한국은 예선에서 기록한 유일한 패배(5-7)를 깨끗하게 설욕하며 은메달을 확보했다. 한국은 남녀 통틀어 아시아 국가 최초로 결승에 오르는 기록도 썼다. 컬링은 1998년 나가노 대회부터 정식종목이 됐는데 아시아 국가 최고 성적은 2010년 밴쿠버올림픽 때 중국 여자 팀이 딴 동메달이다. 나머지는 유럽과 북미가 싹쓸이했다.
한국은 이제 금메달에 도전한다. 폐막일인 25일 벌어질 결승 상대는 이날 영국을 10-5로 누른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세계랭킹 2위의 강호지만 한국은 예선에서 이미 7-6으로 승리한 바 있다.
한국은 1엔드 부터 3점을 따며 앞서갔다. 김경애가 더블 테이크아웃(한 번에 상대 스톤 두 개를 쳐내는 것)을 성공한 뒤 김은정이 침착하게 마무리했다. 한국은 5엔드 때 서드 김선영이 5번째 샷으로 트리플 테이크아웃에 성공했다. 전광판에 한국말로 ‘대박(awesome)’이라고 뜨자 엄청난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한국은 2점을 따내며 6-3으로 앞서갔다. 경기가 잘 될 때나 안 풀릴 때나 팀원 모두가 환한 미소를 잃지 않아 ‘해피 컬링’ ‘스마일 재팬’으로 불리는 일본이지만 한국이 연이어 침착하게 샷을 성공하자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한국은 7-6으로 앞선 마지막 10엔드에서 한 차례 실수를 저지른 뒤 김은정의 마지막 회심의 샷이 아깝게 비껴가며 동점을 허용해 경기는 연장으로 접어들었다.
연장 엔드에서도 팽팽한 접전이 이어졌고 김은정의 마지막 샷이 일본의 노란 스톤을 앞에 멈춰 버튼 가까이 서는 순간 경기장에는 “대한민국” “대한민국”이 울러 퍼졌다. 짜릿한 한국의 승리였다. 김민정 여자대표팀 감독 옆에 앉은 김초희는 눈물을 쏟았고 한국 선수들도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멋진 샷을 성공하고도 무표정으로 일관해 ‘빙판의 돌부처’라 불리던 김은정도 감격에 겨웠다. 경기 중 늘 안경을 쓰는 그는 승리가 확정되자 안경을 벗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관중들에게 연신 손 키스를 날리고 경례를 하며 감사를 표시했다.
한국 여자 컬링은 이번 올림픽 최고의 히트 상품으로 떠올랐다.
USA투데이는 “한국 여자 컬링은 평창동계올림픽의 가장 뛰어난 스타 중 하나”라며 “슈퍼맨을 연상시킨다”고 전했다. 큰 안경을 낀 김은정이 슈퍼맨의 주인공 켄트와 비슷하다는 의미다. 김은정이 김영미에게 스위핑을 하라고 지시할 때 애타게 부르는 “여영~미이~”라는 말은 최고 유행어가 됐다.
외신들은 한국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한국 여자 컬링은 이미 금메달을 딴 거나 다름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은 진짜 금메달까지 접수할 태세다. 그들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강릉=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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