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남남ㆍ한미 갈등 야기하며
대북제재 느슨하게 할 의도
김영철은 북한 대남정책 총책임자
이산가족 등 실무 문제 풀 수도
통일부, 설명 자료 배포하는 등
비판 여론 진화에 집중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 참석을 수용한 정부 결정을 놓고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남남ㆍ한미갈등을 노린 북한의 노림수와 남북관계 개선 및 북핵 해법 전기 마련을 위해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정부의 고육지책이 이번 논란의 핵심이다.
김 부위원장의 위치는 모순적이다. 2010년 정찰총국장 당시 일어났던 천안함 사건의 포괄적 책임자로 꼽히지만, 이번에는 북한에서 대남정책과 남북대화를 총괄하는 통일전선부장 자격으로 방남하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천안함 사태 책임을 물어 김 부위원장 방남을 불허해야 한다는 압박에 처했지만, 대화에 나선 북한의 대남정책 총책임자가 평창올림픽 폐회식에 참석하겠다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도 22일 국회에서 “김영철이 북한에서 통전부장을 맡아 대남정책을 총괄하고 있다”며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 비핵화를 풀어나가야 하는 입장에서 김영철의 참석을 수용했다”고 밝혔다.
김 부위원장을 보낸 북한의 의도는 선명하다. 천안함 사건 책임론을 부정하면서, 남북관계 개선 메시지를 보내고, 동시에 대북제재의 끈을 또 하나 느슨하게 하는 1석3조 효과를 노렸다는 분석이다. 김준형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23일 “북한은 김영철을 보내 예방주사를 맞은 격”이라며 “올림픽이 방패가 돼 평소라면 문제가 될 수 있는 제재 문제가 상당부분 해소됐다”고 말했다.
정부 입장에선 논란을 예상하면서도 남북의 얽힌 매듭을 풀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이산가족 문제ㆍ군사회담 등 산적해 있는 문제를 실무적인 차원에서 풀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남남갈등 증폭은 정부 입장에선 큰 부담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웹사이트에는 ‘천안함 폭침의 주범인 김영철 방남 철회’, ‘방남 시 체포해야 한다’는 의견 300여건이 23일 오후 6시까지 올라왔다. 천안함 유족들도 이날 성명서를 내고 김 부위원장의 평창 폐회식 참석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천안함 46용사유족회’와 ‘천안함 재단’ 등 유족단체는 24일 광화문에서 추가 기자회견도 갖는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천안함 피격 사태에 대해 김 부위원장의 책임을 모호하게 만든 정부의 전략은 미국 정부뿐만 아니라 우리 내부에도 안 좋은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통일부는 이날 이례적으로 6쪽 분량의 ‘김 부위원장 방남 관련 설명자료’를 배포하는 등 비판 여론 진화에 골몰했다. 통일부는 설명자료를 통해 “천안함 폭침으로 목숨을 잃은 46명의 장병들이 보여준 나라를 위한 고귀한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을 것이며 강한 안보로 보답해가겠다는 뜻을 갖고 있다”며 “일부 국민들께서 북한 고위급 대표단 방문과 관련해 염려하시는 데 대해 충분히 이해한다는 점을 말씀 드린다”고 설명했다. 통일부는 또 “상대가 누구이며 과거 행적이 어떤가에 집중하기보다, 어려운 한반도 정세 하에서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실질적인 대화가 가능한 상대인지 여부에 집중하고자 한다”며 “이러한 차원에서 정부는 김 부위원장 방남 수용이라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으며 국민 여러분들께서도 대승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차원에서 이해해 주실 것을 부탁 드린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관계자도 “여론을 감안해 김 부위원장 방남 시 신중하고 엄숙하게 맞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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