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7년
지승호 지음
안나푸르나 발행・324쪽・1만4,800원
2011년 홍상수 감독의 영화 ‘북촌방향’에 한 배우가 잠시 등장했다. 1990년대 후반 주연급으로 제법 왕성한 활동을 하다 갑자기 사라진 배우였다. 영화 마니아에게는 익숙한 얼굴, 평범한 관객들에게는 낯선 존재였다.
배우는 ‘관상’(2013)과 ‘암살’(2015) 등을 거치며 얼굴을 널리 알렸다. 일상 업무로서 고문을 행하는 경찰(‘남영동 1985’・2013), 국가를 위해서라면 조작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검사(‘소수의견・2015), 부하 직원들을 벼랑 끝까지 몰아세우는 상사(‘오피스’・2015), 갑질에 익숙하고 이기적인 중년 남성(‘부산행’・2016) 등 생활 속 악인을 주로 연기했다. 평범한 듯 매끄러운 얼굴, 살짝 치켜 뜬 눈이 그의 역할과 무관치 않다. 어느 정도 높은 교육을 받았고 생존 본능이 강한, 대한민국 중년 남성의 평균치가 김의성의 육체를 통해 형상화되곤 했다. ‘꼰대’ 배역들과 다른, 스크린 밖 활동도 그의 인지도를 높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진보적 발언을 서슴지 않고, 젊은 연예인들과 교유하는 모습을 보였다. 배우로서의 이미지와 자연인으로서의 삶이 확연히 다르니 이런 수식이 따랐다. ‘이상한 배우’, ‘이상한 아저씨’.
책은 인터뷰 전문가 지승호와 김의성의 문답을 통해 10년 넘은 공백을 딛고, 충무로의 간판 조연 배우 중 한 명으로 부상한 배우의 삶과 연기, 인생에 대한 생각 등을 전한다. 김의성의 53년 삶은 1970년대 개발연대의 풍경과 80년대 대학 운동권의 열정과 치기, 90년대 운동권의 조락, 2010년대 한국연예계의 풍속도를 담고 있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살이 속에서 서울 금호동, 부산, 서울 잠실을 오갔던 유년시절, 고교시절 나이트클럽에서 처음 만나(김의성은 “이상하게 생긴 애가 화장실에서 머리를 빗고 있더라구요”라고 말한다)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배우 박중훈과의 관계, 고3 시절 바짝 공부해 서울대 경영학과에 합격한 사연 등이 파노라마가 되어 펼쳐진다.
부인의 반대로 연기를 그만두고 베트남으로 건너가 드라마 제작을 했다가 빚더미 위에 앉은 김의성은 왜 충무로로 돌아왔을까. 그의 아버지가 2010년 힘겨운 목소리로 남긴 유언은 ‘재미있게 살라’였다. 김의성은 아버지 장례를 치르면서 부인과의 이혼, 연기 재개를 결심했다. 그는 영화계에 그나마 빠르게 안착할 수 있었던 이유로 자신이 주연했던,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을 든다. “그때 20대 초중반에서 후반에 걸쳐서 그 영화에 충격을 받지 않은 영화학도가 없었으니까요.”
배우에 대한 촌철살인 평가도 눈에 띤다. “정우성은… 위인전에 나와야 할 사람” “(문)성근이 형이 마침 정치를 해주셔서 제 설 자리가 생긴 거죠”.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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