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당국 “소방장비 부족 진화 난항”
미세먼지 1㎥당 2000㎍ 웃돌아
남한 수도권 농도의 10배 달해
CO 농도 높아 기름 화재 추정
원유 수급 더 악화될 가능성
북한 최대 규모의 정유시설이 위치한 함경북도 나진ㆍ선봉지역에서 1주일째 큰 불이 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로 가뜩이나 원유 수급이 여의치 않은 북한 경제가 회복할 수 없는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란 분석이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22일 “러시아 접경지역과 인접한 북한 나선지역에 최근 큰 화재가 발생해 1주일째 불길이 포착되고 있다”며 “북한은 소방헬기 같은 장비가 부족해 제대로 진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나선지역은 러시아가 공급한 원유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시설이 밀집한 곳으로, 연간 정제능력 200만 톤 규모의 승리화학연합기업소가 자리잡고 있다.
화재로 인해 나선지역 상공의 미세먼지 농도가 급격히 올라가고 있는 사실은 데이터로도 확인된다. 위성사진을 분석해 실시간으로 전세계 기상 상황과 대기오염지수를 보여주는 ‘Earth Wind Map’ 사이트에 따르면, 22일 현재 북한 나선의 미세먼지는 1m³당 2,000㎍을 웃돌고 있다. 이날 수도권 상공의 미세먼지 농도가 1m³당 200여㎍에 그친 것과 비교해 10배에 달하는 수치다. 북한은 중국과 마주한 신의주에 또 다른 대형 정유시설인 봉화화학공장(연간 150만 톤 규모)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지역의 미세먼지 농도는 100여㎍에 불과했다. 나선지역의 미세먼지 농도가 기형적으로 높아진 건 원유 정제에 따른 대기오염과 상관없다는 의미다.
정보당국은 일단 나선지역 개활지에서 불이 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정유시설에서도 화재가 발생했는지 여부는 함구하는 상태다. 정부 관계자는 “대북제재와 맞물려 자칫 북한을 자극할 수도 있기 때문에 판단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선지역 화재는 일반적인 자연발화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통상 풀이나 나무를 태우면 일산화탄소(CO), 일산화질소(NO), 이산화질소(NO2), 아황산가스(SO2) 같은 오염물질이 고르게 발생하는데, 이와 달리 나선지역은 유독 CO의 농도가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원유가 불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특히 나선지역에 편서풍이 지속적으로 불고 있는데도 오염물질이 뿜어져 나오는 중심부는 이동하지 않고 있다. 산불처럼 대기 오염원이 확산돼 주변으로 번지는 것이 아니라, 국지적으로 특정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오염물질이 배출되고 있다는 의미다. 바람이 세지면 미세먼지 농도가 잠시 떨어졌다가 바람이 약해지면 다시 농도가 치솟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북한의 원유 저장ㆍ정제시설에서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다는 명백한 증거”라며 “1주일 이상 불길을 잡지 못할 만큼 상당히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유엔 안보리는 지난해 12월 대북제재 결의안 2379호를 채택해 대북 원유 공급 상한선을 연간 400만 배럴로 제한하며 북한에게 절실한 원유를 지렛대로 압박 수위를 계속 높여가고 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