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시대에서 차리는 시대로
오덴세 등 테이블웨어 업체들
음식 담는 법 마케팅 열풍
라면을 가지런히 담고
그릇에 묻은 국물만 닦아도
'캐주얼 다이닝' 만족감 얻어
사진발. 단어의 의미가 바뀌었다. 국어사전에도 실려 있는 이 말의 원래 뜻은 ‘사진을 찍은 데서 나타나는 효과’다. ‘동생은 사진발이 잘 받는다’처럼 쓰인다. 사진과 실제의 괴리, 이 거짓말에 대한 질타의 의미도 섞여 있었다. 그러나 이제 모두가 셀피(selfieㆍ스스로를 찍은 사진) 모델이 되는 시대, 실제보다 나은 모습으로 사진에 찍히는 건 이제 흠이 아니게 됐다.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하얀 거짓말이 요즈음의 셀피다.
먹는 시대에서, 차리는 시대로
빛을 잘 받아서든, 원본 사진을 보정했든 사람들은 기꺼이 사진발을 원하는 건 음식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사진발을 능가하는 음식이 미덕이 됐다. 메뉴판에 들어간 사진만 잘 나와서는 부족하다. 실제 음식은 메뉴판 속 사진보다도 더 좋은 비주얼을 갖춰야 한다. 누가 어떻게 찍어도 자연스럽게 사진발을 잘 받는 음식이기 위해서는 ‘원판’이 더욱더 중요하니까.
지난해부터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인스타그램에 쓸만한)’이라는 말은 영상을 기반으로 한 유투브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최근 젊은 층에서 회자되는 식당들은 사진발 잘 받는 음식을 기본 소양처럼 갖추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외식업계에서뿐 아니라 가정에서 먹는 한 끼 식사에서도 음식의 사진발이 중요해졌다.
이제 ‘먹방’ 열풍의 무게 중심은 단지 음식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릇과 커틀러리(서양식 식사에 사용하는 기구나 용기) 등 하드웨어로 옮겨가고 있다. 먹방 열풍을 따라 간편 가정식과 음식 배달 서비스도 성장하며 역설적으로 하드웨어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먹는 시대에서 차리는 시대로 확장된 것이다.
테이블웨어(식탁용 식기류) 브랜드들의 마케팅에서 이러한 변화를 읽을 수 있다. 기존 마케팅은 주로 ‘우리 그릇을 이렇게 쓰면 예쁘다’라는 활용법에 초점을 뒀다. 스웨덴 브랜드 이케아는 한국 진출 후 ‘헤이 집밥’ 캠페인을 통해 각종 그릇과 보관용기의 활용법을 보여주는 전략을 펼쳤다. 최근엔 ‘우리 그릇에 이렇게 놓으면 더 에쁘다’라는 마케팅이 대세다. 테이블웨어 브랜드 오덴세는 ‘일상을 플레이팅 하다’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그릇에 음식을 어떻게 두어야 좋은가라는 새로운 관점이다.
배달 받은 음식을 예쁜 접시에 멋들어지게 차려 놓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플레이팅이 고생스럽게 요리한 음식이 주는 행복에 맞먹는다고 여긴다. 요리에 대한 욕구는 배달 시장의 확대 등으로 줄어들고 있는 반면 플레이팅에 대한 열망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차려낸 음식을 SNS에 올리는 건 기본이다.
플레이팅, 디자인의 기초
사실 우리민족은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로 일찌감치 음식의 외적인 모습을 중시해 왔다. 언제나 우리는 맛 좋은 음식을 더 맛있고, 푸짐해 보이도록 차리는 데에 신경을 썼다. 신라 유물로도 출토됐다는 전래의 음식 구절판만 해도 얼마나 비주얼을 중시한 음식인가.
보기에 아름답고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음식이 되려면 대체 어떻게 차려야 할까. 조리 방법이나 재료에 대한 연구는 충실히 이뤄져 왔지만 플레이팅에 대해서는 아직 체계적인 이론이나 교육과정이 없다. 그런데도 대개의 레스토랑, 특히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의 음식은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아름답다.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는 것일까?
레스토랑 ‘제로콤플렉스’의 이충후 셰프는 아름다운 플레이팅으로 시각적 맛까지 선사하려 한다. 이 셰프는 “가르쳐주는 곳은 없고, 배우려는 사람도 없다. 모든 요리사들은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미감대로 플레이팅을 본능적으로 한다. 회화에 다양한 장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파인다이닝의 음식이 더 아름다운 이유도 “테이블이 넓고 음식이 코스로 서빙되기 때문에 접시 크기를 활용해 여백을 줄 수 있는 자유도의 범위가 넓다”고 간단하게 설명했다. 테이블이 좁고 음식이 한 상에 차려지는 캐주얼 다이닝은 하나의 그릇에 여백 없이 음식을 담게 되는 상황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가정에서 파인 다이닝처럼 보기 좋은 음식을 위해, 넓은 테이블에 커다란 접시 하나, 한 접시에 100g 가량의 소량의 음식이 담는 건 매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플레이팅의 법칙은 캐주얼 다이닝에서 찾아보는 게 더 적합하다.
흔히 먹고 쉽게 차릴 수 있는 라면을 예로 들어보자. 사람들은 보통 라면을 끓여 달걀이 국물에 잠기거나 말거나 그릇에 ‘철푸덕’ 담는다. 라면 포장에 그려진 조리예 사진이랑은 다르기 마련이다. 조리예를 촬영한 푸드 스타일리스트는 라면을 계획적을 디자인해 담는다. 미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구도로 재료들을 배치한다. ‘철푸덕’ 담지 않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면을 먼저 담고, 국물을 담고, 마지막으로 달걀과 같은 각종 고명을 얹는 것 만으로도 비주얼이 확 달라진다.
잘한 플레이팅의 두 번째 포인트는 ‘뭔가를 더 했다’는 점이다. 라면 포장지에 있는 날달걀 노른자와 생생한 대파를 떠올리면 알기 쉽다. 풀린 달걀이나 퍼진 대파보다 시각적으로 주목을 끌어 음식의 미감을 끌어올린다. 희멀건 한 파스타 위에 놓인 작은 허브 잎, 설날에 먹은 떡국의 실고추와 달걀 지단 고명. 뭐라도 더하면 눈에 띄게 보기 좋아진다. 라면 조리예에서 표고버섯(스낵면)이나 소고기(신라면), 청경채(불닭볶음면), 오이 채(비빔면)를 얹은 것은 소비자를 기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각을 통해 식욕, 즉 구매욕을 자극하기 위함이다.
반대로 ‘뭔가를 뺀다’는 것도 플레이팅의 비법이다. 시각적으로 불필요한 것을 빼내는 작업이다. 조리예의 라면은 면이 제멋대로 헝클어져있는 법이 없고 완벽하게 정리돼 있다. 꼬들꼬들한 질감이 시각적으로 전달된다. 그릇에 국물이 묻어 있는 법도 없다. 불필요하게 이목을 끌어 득이 되지 않는 요소들을 제거한다. 파스타의 경우 젓가락이나 집게로 면발을 정돈해 그릇에 말아 담는 노동은 작지만 큰 수고다.
내가 끓인 라면도 맛있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 아니던가. 살다 보면 누군가를 위해, 어쩌면 나 자신을 위해 조리예 같은 정성 들인 음식이 그리운 날도 생기는 법이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사진=강태훈 포토그래퍼ㆍ김보선 푸드 스타일리스트
취재협조 오덴세
실전, 플레이팅!
책 ‘플레이팅의 기술’(그린쿡・2016)에 따르면 플레이팅은 점, 선, 면, 입체, 색, 공간(균형) 등 요소를 활용한 디자인이다. 이 책의 관점대로 그릇을 캔버스로 둔 회화, 또는 입체 작품으로 음식을 이해하면 플레이팅 감각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딱딱한 이론은 당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정에서 어렵지 않게 시도할 수 있는 음식을 통해 플레이팅의 디자인 요소 활용을 배워 본다.
▦엔다이브 블루치즈 핑거 샐러드
정사각형 접시를 사용해 엔다이브의 일정한 선을 평행으로 배치하고, 엔다이브 방향을 교차시켜 리듬감을 줬다. 잘게 다진 베이컨 조각이 시각적으로나 맛에 있어서나 액센트 요소로 활약한다. 잘게 다진 파슬리로 좀더 화려하게 색을 사용했다.
<만드는 법>
1. 엔다이브는 한 잎씩 떼어 두고 뿌리 쪽을 일정하게 잘라내 길이를 비슷하게 맞춰 준비한다.
2. 사과와 배는 짤막하게 채썰어서 레몬즙과 올리브 오일, 소금에 버무려 뒀다가 엔다이브 속에 채운다.
3. 잘게 썰어 노릇하게 구운 베이컨과 생 블루치즈를 2에 얹고 다진 파슬리로 장식한다.
▦ 훈제연어를 활용한 타르타르
둥근 접시에 둥근 면을 여럿 배치한 형태. 동그란 틀에 연어 타르타르를 담아 동그랗게 쌓아 올렸다. 틀이 없을 때는 페트병을 잘라 사용할 수 있다. 큰 기술 없이도 프로의 플레이팅을 따라할 수 있는 방법이다. 소스에 들어간 그릭 요거트와 디종 머스터드를 레스토랑의 소스처럼 활용해 접시 위에 균형을 맞춰 배치했다. 요거트는 숟가락으로 떠서 접시 위에 놓은 뒤 숟가락의 등쪽을 활용해 단번에 선을 그어 모양을 낸다. 역시 소스에 들어간 후추가루는 선의 형태로 뿌려 밋밋한 플레이팅에 액센트를 줬다.
<만드는 법>
1. 훈제연어와 양파, 케이퍼를 다지고 잘게 썬 딜과 디종 머스터드,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식초, 소금과 후추를 넣고 가볍게 뒤섞는다.
2. 원형의 모양을 접시에 놓고 1을 채워 올린 뒤 연어알과 딜로 장식한다.
3.그릭 요거트와 디종 머스터드, 후추로 플레이팅을 완성한다.
▦엔초비와 마늘 오일 파스타.
넓고 얕은 볼을 활용해 소담하게 담았다. 면은 집게를 사용해 모양을 가지런히 잡고, 통으로 구운 마늘은 ‘점’의 구성요소로 활용해 불규칙적이지만 균형감 있게 배치했다. 작은 이탈리아 파슬리 잎을 뿌려 구운 마늘의 붉은 색과 대비를 이루게 하고 후추가루를 마지막에 흩뿌려 비주얼을 완성한다.
<만드는 법>
1. 링귀네 파스타는 소금간한 물에 알덴테(씹을 때 단단한 느낌이 나는) 상태로 삶고, 엔초비와 마늘은 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약하게 볶는다.
2. 엔초비가 잘게 흩어지고 마늘이 노릇해지면 1의 면수를 두 국자 정도 넣고 한소끔 끓인 뒤 삶은 링귀네를 넣고 뒤섞는다.
3. 2에 소금간을 마저 한 다음, 이탈리아 파슬리와 올리브 오일을 뿌리고 후추를 흩뿌려 완성.
▦아보카도 명란 덮밥
면기를 사용해 덮밥의 모양을 아담하게 살렸다. 밥은 눌러 담지 않고 성글게 담아 부드럽게 떠지는 동시에 보기에도 좋게 담았고, 일정한 모양으로 썬 아보카도와 얌전하게 구운 달걀 프라이를 면으로 활용해 덮밥을 단면으로 구성했다. 밋밋할 수 있는 면 구성에서 동글게 조각 내 썬 명란을 액센트 요소로 사용해 상큼한 비주얼이 되도록 했다.
<만드는 법>
1. 아보카도는 껍질을 벗기고 씨를 제거한 후 얇게 썬다.
2. 명란젓은 큼직하게 썰고 달걀은 노른자가 반숙이 되도록 프라이 한다.
3. 그릇에 밥을 성글게 담고 1을 모양 내서 얹은 뒤 참기름을 한 방울 떨어트려 완성한다.
▦미니 양배추와 양갈비 구이
좁은 직사각형 접시를 사용해 뼈째 구운 양갈비 구이가 더욱 푸짐해 보이도록 했다. 양갈비의 뼈는 규칙적으로 사선으로 교차시켜 통일감을 줬다. 함께 구운 미니 양배추를 불규칙적으로 배치해 비어 있는 면을 살려냈다. 밝은 빨간 색을 띤 핑크 페퍼를 거칠게 갈아 양갈비 위로 뿌려 생기를 더한다.
<만드는 법>
1. 양갈비는 소금과 후추를 뿌려 뒀다가 뜨겁게 달군 팬에 포도씨유를 둘러 로즈마리와 함께 굽는다.
2. 반으로 썬 미니 양배추는 팬 한쪽에서 소금을 뿌려 가며 함께 굽는다.
3. 양갈비는 5분 가량 따뜻한 곳에서 레스팅시킨 후 접시에 올리고, 미니 양배추와 핑크페퍼로 플레이팅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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