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를 축소ㆍ은폐하고 직권을 남용한 혐의로 기소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1심에서 실형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는 22일 우 전 수석의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검찰과 특검의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 ‘법꾸라지’로 불릴 정도로 여론의 지탄을 받아 온 점을 감안하면 1년여 만의 단죄는 사필귀정이라 할 만하다.
우 전 수석의 핵심 혐의는 국정농단의 주범인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비위를 인지하고도 감찰 직무를 유기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미르ㆍK스포츠재단 설립과 운영에 안종범 전 수석과 최씨가 관여됐다는 보도가 2016년 7월부터 이어졌는데도 진상 파악이나 감찰을 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인정했다. “오히려 청와대의 적극적인 은폐활동에 가담해 국가 혼란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돌이켜보면 그가 민정수석으로서 직무에만 충실했어도 일개 민간인에 불과한 최씨가 비선권력으로서 국정을 농단하는 어이없는 사태를 막거나 적어도 줄일 수 있었다. 그런데도 “최순실을 몰랐다” “대통령 지시에 따른 정당한 업무수행”이라고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그에게서 최소한의 양심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정작 자신의 본연의 직무에 소홀했던 우 전 수석은 사적인 일에는 권한을 마음껏 남용했다. 우 전 수석 처가와 넥슨의 강남 부동산 매매, 아들의 병역특혜 의혹 등이 제기돼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감찰에 나서자 “민정수석실이 지위와 위세를 이용해” 노골적으로 방해했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이번 판결은 우 전 수석이 국가정보원을 통해 이 전 감찰관을 불법 사찰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또 다른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우 전 수석에 대한 선고로 국정농단 사건 핵심 인물에 대한 1심 선고는 사실상 박근혜 전 대통령 한 명만 남게 됐다. 2016년 말 시작된 국정농단 의혹 수사로 재판에 넘겨진 인사는 모두 51명이다. 주목할 것은 이들 가운데 우 전 수석은 물론 김기춘 전 비서실장, 안종범 전 수석 등 청와대 비서진들에 대한 사법부의 엄정함이다. 재판부는 다르지만 “대통령을 올바르게 보좌할 책무가 있는데도 이를 태만히 해 국정농단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죄책이 매우 무겁다”는 데는 동일한 판단을 내렸다. 헌법과 민주주의를 훼손한 국기문란 사건의 책임을 철저히 묻지 않으면 반드시 재발한다는 교훈을 명확히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남은 재판에서도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한 심판이 내려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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